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사라진 기록은 조작인가? 박종인식 위서론의 논리— 사료 부재를 근거로 한 위서 단정의 오류에 대하여 —

글 : 양은모 (세무사)

박종인 기자가 제기한 환단고기 관련 주장은 논증 과정에서 중대한 논리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 핵심은, 특정 사서가 현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당 사서의 후대 조작 가능성을 단정하는 데 있다. 이는 사료 비평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추론 방식이며, 학문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1. 문제 제기: ‘사료 부재 = 후대 조작’이라는 단정

박 기자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태백일사』에 언급된 「이태백전서 옥진총담」이라는 문헌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② 해당 내용은 1924년 신채호의 글에서 확인된다.
③ 따라서 이유립은 신채호의 글을 차용해 환단고기를 구성했다.
④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위서다.

이 논증은 겉보기에는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전제를 무비판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즉, “현재 확인되지 않는 사서는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후대 기록이 곧 원천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역사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2. 사료 소실 가능성을 배제한 추론의 오류
역사 기록이 100% 온전히 후대까지 전해진다는 가정은 사실상 성립 불가능하다. 고대와 근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문헌이 전쟁, 화재, 검열, 사상 탄압, 개인 소장 해체 등의 이유로 소실되었다는 점은 상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헌이 “현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후대에 조작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부재 증명(argument from absence)이라는 대표적인 논리 오류에 해당한다. 이는 남아 있는 기록만을 근거로 사라진 기록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하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이기도 하다.

3. 단선적 영향 가정의 문제점
박 기자의 주장은 신채호 → 이유립이라는 단방향 영향 관계만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 유일한 설명은 아니다. 특히 이유립의 부친 이관집과 신채호 사이에 교류가 있었던 사실이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채호가 어떤 사료를 어떤 경로로 접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정할 수 없다.
즉, 이유립이 신채호의 글을 참고했을 가능성 뿐 아니라 신채호가 태백일사 계열의 사서를 접했을 가능성 또한 동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학문적 태도란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뒤, 증거의 무게에 따라 가설을 조정하는 것이지, 특정 설명만을 선험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4. 위서 판정의 기준 문제
‘위서’라는 판단은 단일 정황이나 추정으로 내려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통상적으로는 필사 계보, 용어 사용의 시대성, 문체 분석, 사상사적 맥락, 외부 사료와의 교차 검증 등 복합적 기준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헌의 현존 여부와 일부 내용의 선후 관계만으로 위서임을 단정하는 것은, 학술 비평이라기보다는 주장에 가깝다.

5. 기자의 역할과 공정성 문제
기자는 하나의 학설을 소개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마치 확정된 사실처럼 제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역사 해석처럼 논쟁이 첨예한 영역에서는 쟁점이 되는 전제, 불확실성, 반론 가능성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공정성의 기본이다. 특정 학계의 시각을 비판 없이 전달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는 균형 잡힌 보도라 보기 어렵다.

결론
박종인 기자의 주장은 사료 소실이라는 역사 연구의 현실을 간과한 채, 부재를 근거로 단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는 환단고기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논증 방식 자체의 문제다. 기자의 본질적 역할이 사실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균형 잡힌 시각 제시에 있다면, 최소한 가능성과 단정을 구분하는 태도는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AI 이미지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