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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면 판결이 아닌 질문을 남겨야 한다 박종인 기자의 위서론을 둘러싼 학문 태도와 저널리즘의 과제
박종인 기자의 유투브 화면 캡쳐

역사는 언제나 불완전한 기록 위에 세워진다. 남아 있는 문헌보다 사라진 문헌이 더 많고, 확정된 사실보다 해석의 여지가 더 넓다. 이 때문에 역사 연구는 단정이 아니라 질문에서 출발하며, 결론을 서둘러 확정하기보다 가능한 해석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으로 축적되어 왔다. 이러한 학문적 태도가 유지되지 않을 때, 역사 해석은 연구의 영역을 벗어나 특정 신념이나 주장에 가까워질 위험을 안게 된다.

최근 박종인 기자가 제기한 『환단고기』 위서론, 특히 ‘옥진총담’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 연구와 언론인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박 기자는 『태백일사』에 인용된 ‘옥진총담’이라는 문헌이 현재 확인되지 않으며, 신채호 선생의 저술에서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는 점을 근거로 『환단고기』가 후대에 구성된 위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하나의 문제 제기로서 공론의 장에 제시될 수 있는 주장이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논리 구조와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학문적·저널리즘적 관점에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박 기자의 주장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 사료는 실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를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그러나 역사 연구의 실제 조건은 이보다 복합적이다. 문헌의 전승은 전쟁과 화재, 정치적 탄압과 검열, 필사 과정의 단절 등으로 끊임없이 손실되어 왔으며, 현존 여부만으로 과거의 존재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 때문에 사료의 부재 자체를 곧바로 허구의 증거로 삼는 방식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어 왔다.

 

박종인 기자의 유투브 화면 캡쳐

또한 학문적 논의라면 복수의 가능성을 병렬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신채호 선생이 이미 태백일사 및 관련 사서를 접했을 가능성, ‘옥진총담’이 독립된 단행본이 아니라 이태백 관련 글을 묶어 부른 문집 명칭일 가능성, 혹은 특정 인용 대목의 후대 가필 여부와 문헌 전체의 성격을 구분해 살펴야 한다는 문헌학적 관점 등이 함께 논의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박 기자의 문제 제기에서 이러한 가능성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하고 있다.

‘발해 국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유사한 쟁점이 드러난다. 박종인 기자는 박상석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당 현종에게 알 수 없는 문자로 국서를 보낸 주체가 발해가 아니라 거란이나 토번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해당 가설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문자 사용 시기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보다 면밀한 연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거란이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본격적으로 창제한 시기가 10세기 초로 알려져 있는 만큼, 당 현종 재위기와의 시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추가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관련 사안은 단정적인 결론보다는 추가 자료 검토와 학술적 토론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문헌 전체를 평가하는 방식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역사서에는 원본과 후대 가필, 편찬자의 관점, 서로 다른 시기의 기록이 함께 포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기』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역시 이러한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특정 인용이나 일부 대목의 문제 제기가 곧바로 문헌 전체의 성격을 단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문적 합의와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기자의 역할 또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자는 하나의 학설이나 해석을 소개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학계의 확정된 결론인 것처럼 전달될 경우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 특히 『환단고기』처럼 학계 내에서도 평가가 갈리고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일수록, 쟁점의 구조와 전제, 반론의 존재, 증거의 한계를 함께 제시하는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이는 특정 입장을 옹호하거나 배척하기 이전에 공론장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언론의 기본적인 책무에 해당한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의 진위 여부를 넘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한국사 인식과 민족사학·강단사학 간의 인식 차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역사 서술을 어떤 태도로 다루어 왔고, 또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신중하고 차분한 학술적 검토와 공개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역사는 확신의 언어로 다룰 대상이 아니다. 학자는 의심을 남겨두는 사람이고, 기자는 그 의심들이 충돌하는 장을 공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원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박종인 기자의 위서론 주장은 비판의 내용 자체보다도 논의가 제시되고 전달되는 방식에서 여러 과제를 남긴, 부적절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향후 이 논쟁이 단정이 아닌 질문을 중심으로, 배제보다는 검토를 통해 보다 성숙한 공론의 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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