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12월 24일자의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가 쓴 '환단고기와 가림토 문자'라는 칼럼이 있다. 이근우 교수는 실증주의를 표방하며 가림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논거는 서구 중심적인 문자 발달 단계론에 함몰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의 특수성과 해외에 남은 유의미한 흔적들을 간과하고 있다. 역사는 때로 기록된 것보다 지워진 것들 속에 진실을 품고 있는 법이다. 이에 필자는 가림토 문자가 결코 허구가 아닌, 우리 고대 문명의 정수임을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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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진화의 선형성, 그 편견을 깨야 한다
이 교수는 '뜻글자(상형)에서 소리글자(표음)로의 발전에는 수천 년이 걸린다'며 가림토의 시대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는 문명의 발달을 오직 일직선상의 진화로만 보는 서구적 관점이다. 고대 문명이 대재앙이나 국운의 쇠락으로 단절될 경우, 후대의 기술이 전대의 정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는 역사상 부지기수다.
가림토가 기원전 2000년경 등장했다는 사실은 당시 동북아에 천부경(天符經) 등으로 대변되는 고도의 철학적 토양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상형문자 단계를 뛰어넘어 우주의 원리를 기호화한 '인위적 창제'라면, 시기적 선후 관계를 따지는 진화론적 잣대는 무의미해진다.
11개 모음 체계에 담긴 천지인의 철학
가림토의 모음 체계가 복잡하다는 지적 또한 우리 언어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결과다. 현대 한국어는 21개의 모음을 사용하는 '모음의 보고'다. 가림토의 기본 모음 11개는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하늘(·), 땅(ㅡ), 사람(ㅣ)이라는 삼재(三才)의 원리를 바탕으로 조합된 고도의 철학적 체계다. 자연의 소리를 음양오행의 섭리로 풀어낸 이 체계를 타 언어의 단순한 모음 개수와 비교해 '불가능'을 논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나치게 저평가하는 일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 남은 ‘살아있는 증거’
"유물이 한 점도 없다"는 단언은 한반도 내의 기록 인멸만을 고려한 편협한 시각이다. 잦은 전란과 사대주의 속에 사라진 흔적은 일본에서 '아비루 문자'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보존되어 왔다. 일본의 국학자 오향청언(吾鄕淸彦)은 이 아비루 문자가 고조선의 가림토에서 기원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특히 일본 이세신궁에 보관된 유물은 서기 708년에 작성된 것으로, 훈민정음 창제보다 700년이나 앞선다. 또한, 가림토에는 훈민정음 28자에는 없으나 환단고기 기록에는 존재하는 고유의 자형들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훗날 누군가 훈민정음을 베꼈다면, 왜 굳이 세종조차 쓰지 않은 글자들을 창조해 넣었겠는가. 이는 가림토라는 공통의 원형이 존재했음을 가리키는 강력한 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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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방고전(字倣古篆)', 세종은 파렴치한인가 복원자인가
이근우 교수는 가림토 문자를 실체 없는 허구로 단정하며, 세종대왕이 이를 참고했을 가능성을 파렴치한 도용설로 치부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때로 가문의 비기(祕記)와 인적 네트워크라는 은밀한 통로를 통해 흐른다. 필자는 행촌 이암에서 손자 이원, 그리고 세종대왕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전승 경로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단군세기’를 지킨 행촌 이암과 그의 가문
가림토 문자에 대한 기록이 담긴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李嵒)은 고려 말의 수문하시중을 지낸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우리 고대사의 원형을 보존하려 했던 인물이다. 당시 유교적 사대주의가 팽배하던 시기, 이러한 비기들은 국가의 공식 기록보다는 가문의 가업으로 전승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암의 가문인 고성 이씨 문중은 우리 역사의 독자성을 증언하는 문헌들을 소중히 간직해온 ‘역사의 파수꾼’이었다.
세종의 최측근이었던 이원(李原), 그 연결고리
이 교수는 가림토가 어떻게 세종에게 전달될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행촌 이암의 손자인 이원(李原)은 세종대왕 시절 좌의정까지 오른 최고위 관료였다. 세종은 학문적 호기심이 강했고, 특히 음운학과 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새로운 문자를 구상하던 시기에, 선대부터 내려온 고대 문자의 기록을 소장하고 있던 가문의 후손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인가? 이원이 할아버지 이암으로부터 물려받은 『단군세기』 속 가림토의 존재를 세종에게 전했을 가능성은 합리적 추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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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방고전(字倣古篆)’의 실체적 진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명시된 ‘자방고전(字倣古篆, 글자는 옛 전서를 본떴다)’이라는 문구는 중국의 전서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형문자인 중국의 전서를 본떠서 어떻게 완벽한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이 나올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고전(古篆)’은 바로 우리 민족이 고대에 사용했던 ‘옛 글자’, 즉 가림토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문맥이 매끄럽다.
세종은 이원 등을 통해 접하게 된 고대의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그 속에 담긴 음양오행의 원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28자의 훈민정음으로 재창조(Re-creation)한 것이다. 이는 모방이 아니라 잃어버린 민족의 정수를 되살린 ‘역사적 복원’이다.
결론: ‘위서론’을 넘어
가림토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문자가 아니다. 이암이 기록하고, 그의 손자 이원이 세종에게 전달했을 개연성은 역사적 정황상 매우 충분하다. 이근우 교수는 세종의 독창성을 지키기 위해 고대의 뿌리를 부정하고 있으나, 뿌리 없는 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 가림토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명의 유구한 연속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사라진 역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위서론'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식민사학의 잔재를 답습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는 눈앞의 증거들을 열린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 가림토 문자는 우리 역사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찬란했는지를 보여주는 잃어버린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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