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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을 '제국주의'로 둔갑시키는 자들의 지적 게으름— 환단고기를 '범투란주의'라 매도하는 궤변을 비판하며

최근 소위 '주류'를 자처하는 필진들이 우리 고대사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을 '범투란주의(Pan-Turanism)'라는 족쇄에 가두려 애쓰고 있다. 특히 박종인 등의 논객들이 펼치는 논리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광활한 강역과 민족의 시원성을 두고, 그것이 일제가 차용한 범투란주의적 제국주의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 텍스트의 본질을 외면한 채, '넓은 영토'라는 껍데기만 보고 '침략주의'라는 낙인을 찍는 전형적인 오류다.

1. '지배의 논리'와 '상생의 철학'조차 구분 못 하는가?

범투란주의는 19세기 말, 혈통과 언어를 매개로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정치적 팽창주의다. 그 기저에는 타 민족을 압살하고 우월한 종족이 지배권을 행사하겠다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런데 환단고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이 언제부터 침략자의 구호가 되었단 말인가? 타자를 정복하고 굴복시키는 투라니즘과 달리, 환단고기는 인류 문명의 시원에서부터 흐르는 보편적 도덕성과 정신의 광명을 강조한다. 이 극명한 차이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학문적 무능인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인가?

2. '구환일통(九桓一統)'은 침략이 아닌 '가족의 회복'이다

비판자들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방대한 강역을 보며 "히틀러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활권)이나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말하는 구환일통은 무력으로 남의 땅을 뺏는 정복 전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의 광명 정신(桓) 아래 살았던 인류 공동체가 다시금 그 영성을 회복하여 하나로 어우러지자는 수평적 연대의 선언이다. 투라니즘이 '나를 위해 너를 죽이는 것'이라면, 환단고기의 정신은 '우리가 하나임을 깨달아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 이 평화적 가치를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마치 평화주의자의 외침을 전쟁광의 함성으로 곡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 식민사관의 망령이 투영된 역투영(逆投影)의 오류

가장 뼈아픈 지점은,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이들이 오히려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는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투라니즘적 요소를 끌어들였다.

비판론자들은 이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으려는 모든 시도를 '파시즘'으로 몰아세운다. 우리 민족의 장대한 역사를 이야기하면 무조건 '제국주의'가 된다는 그들의 논리는, 거꾸로 "한국인은 반도 안에서 쪼그라들어 살아야만 민주적이고 평화적이다"라는 식민사학적 거세 공작의 재판(再版)일 뿐이다.


결론: 색깔론을 버리고 '정신'을 보라

환단고기는 단순한 영토 확장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가 잃어버린 '밝은 정신(桓)'의 계보를 잇는 경전적 성격의 역사서다. 이를 제국주의적 투라니즘과 연결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기만이요, 우리 정신사에 대한 모독이다.

박종인을 비롯한 비판자들에게 권고한다. 단어 몇 개, 지도의 선 몇 줄에 집착해 '파시즘'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남발하기 전에, 환단고기 행간에 흐르는*'모두가 하나로 환하게,환이 되어 살자'는 대동(大同)의 정신부터 공부하라.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그 용감이 우리 민족의 뿌리를 난도질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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