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이라는 ‘옷’으로 본질을 재단할 수 있는가?
글 : 이매림 (매림역사TV)
최근 박종인 기자가 『환단고기』, 특히 이암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단군세기》를 ‘명백한 위서’라고 단정 짓는다. 그가 내세우는 결정적 증거는 ‘송화강(松花江)’이라는 지명이다. 송화강은 명나라 시기에나 등장하는 지명인데, 고려의 이암이 이 용어를 썼으니 후대의 조작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고전 문헌이 전수되고 편집되는 보편적인 과정을 간과한 평면적인 비판에 불과하다. 사실(Fact)을 너머 이면의 진실(Truth)을 추구해야 할 기자의 시각이 단어 하나에 매몰되어 기록의 방대한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대단히 속 얕은 행위다.
‘지명 업데이트’는 인류 고전 전수의 보편적 문법이다
역사서나 경전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명을 ‘현대화’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관행이었다.
성경, 불경, 유가 사서와 같은 거대 경전들은 수천 년에 걸쳐 필사되고 전수되었기 때문에, '후대 편집자의 가필(Interpolation)' 흔적이 매우 풍부하게 나타난다. 먼저 경전을 보자.
성경 (Bible), "모세가 자기의 죽음을 기록하다?"
성경 비평학에서 가장 유명한 가필의 증거는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인 '모세오경'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14:14에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단(Dan)'까지 쫓아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단'이라는 지명은 아브라함 사후 수백 년 뒤, 단 지파가 그 땅을 점령한 후에야 붙여진 이름이다. 즉, 후대 기록자가 당시 독자들이 알기 쉽게 당대의 지명으로 고쳐 쓴 것이다. 또 모세가 썼다고 알려진 신명기 마지막 34장에는 모세의 죽음과 장사 지내는 장면이 상세히 나온다. 자신이 죽은 뒤의 일을 직접 쓸 수는 없으므로, 이는 명백히 후대 편집자가 덧붙인 내용입니다.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위서를 운운하지 않는다.
불경 (Buddhist Sutras), "대승경전의 성립"
불교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암송하여 전하다가 나중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초기 불경(아함경 등)은 팔리어/프라크리트어로 전해졌으나, 나중에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화려한 수사와 당시 인도 사회의 발전된 철학적 용어들이 대거 삽입되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효(孝) 사상을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부모은중경》 같은 경전들이 만들어졌다. 이는 인도 원전에는 없는 내용으로, 중국 현지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가필된 대표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로 위서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유가 사서 (Confucian Classics), "금문과 고문의 논쟁"
유교 경전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이후 복원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가필과 편집이 이루어졌다. 나라 때 불탄 경전을 한나라 때 유생들이 기억을 되살려 기록(금문)하거나 벽 속에서 발견된 옛 글자(고문)를 해석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의 통치 철학인 ‘ 인감응설(하늘과 인간은 통한다)'이 은근슬쩍 고대 성왕들의 말씀 속에 삽입되었다. 성인들이 썼다는 『상서』 중 일부 편들이 사실은 4세기경 동진(東晉) 시대 인물이 위조하거나 대폭 가필했다는 사실이 고증학적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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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사서에서 발견되는 ‘지명 환치’의 사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박 기자의 논리대로라면 다음의 정사(正史)들 또한 모두 ‘위서’의 반열에 올라야 할 것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지명을 논하면서 ‘북한산군’을 설명하며 고려 시대 지명인 “지금의 양주”라고 적었다. 고구려 기록에 고려의 행정구역명이 등장하는 것은 전수 과정의 당연한 친절이다. 8세기에 편찬되었다 전하는 『일본서기』는 고대의 사건을 기록하면서 당시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율령제 지명으로 과거를 덧칠했다. 이는 고대 일본의 실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편찬 시기의 반영일 뿐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기원전 13세기의 트로이 전쟁을 다루지만, 텍스트 안에는 기원전 8세기 철기 시대의 도구와 지명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구전이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을 연구하지, 트로이 전쟁 자체를 허구로 몰지 않는다. 또한 이 기록을 통해 동서양의 고고학이 출발하였다. 위서라 운운할 것인가?
사마천의 『사기』는 상고시대 오제(五帝)의 역사를 기록하며 한나라 시대의 관직명과 지리 체계를 투영했다. 사마천이 한나라 사람이기에 발생한 지리적·용어적 시차를 두고 그가 기록한 황제(黃帝)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기』도 후세에 가필의 흔적이 계속 논해지고 있다.
이처럼 지명의 시차(Anachronism)는 고대사서에서 오히려 흔히 발견되는 편집의 흔적이다. 이를 근거로 전체 텍스트를 부정하는 것은 문헌학의 기초조차 무시하는 처사다. 《단군세기》의 ‘송화강’ 역시 원본의 지명을 후대 전수자들에 의해 당시 대중에게 익숙한 명칭으로 의도적 환치를 한 결과로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본질을 외면한 ‘단어 찾기’와 기자정신의 결여
기자란 마땅히 현상의 지엽적인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본질적인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단군세기》는 고대 한국의 국가 운영 원리, 정신세계, 그리고 정교한 천문 기록(오성취루 등)을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게 담고 있다. 이 방대한 정보량과 사상적 깊이는 단순히 20세기의 지식만으로 조작하기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화강’이라는 단어 하나를 찾아내어 전체 기록을 위서로 몰아세우는 것은, 거대한 숲의 생태계를 보지 못한 채 죽은 나뭇가지 하나를 흔들며 숲 전체가 가짜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는 진실을 탐구해야 할 기자가 가져야 할 태도라기보다, 정해진 답을 위해 증거를 짜 맞추는 확증편향에 가깝다. 내용이 이토록 풍부하고 정교한데 단어 하나의 시차를 빌미로 위서를 운운하는 것은 기자로서 참으로 속 얕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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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비판하라
지명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기호일 뿐이다. 박 기자의 주장은 ‘옷이 새것이니 몸도 가짜다’라고 우기는 격이며, 이는 문헌 비평의 기본조차 망각한 무책임한 선동이다.
진정한 기자정신이라면 텍스트의 ‘껍데기’인 지명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풍부한 고대사의 실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기록이 가리키는 역사적 진실의 무게를 치열하게 검증했어야 한다. 단어 하나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오만함을 버리고, 이제라도 기록의 본질을 직시하는 깊이 있는 안목을 갖추길 바란다.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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