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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고독한 거인, 김광석 교수가 되찾아준 발해의 자부심

오늘날 우리가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당당한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척박한 땅에서 홀로 붓을 들고 역사의 진실과 싸워온 학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홍콩이라는 낯선 타국 땅에서 평생을 발해사 연구에 투신한 김광석(金光錫) 교수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1. 동북공정의 거센 파고에 맞선 '학문적 방패'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 정권으로 편입시키려 끊임없이 시도해 왔고 지금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역사 왜곡의 한복판에서 김광석 교수는 해외 학계 최초의 발해사 박사로서 가장 강력한 학술적 방패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단순히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철저한 사료 고증과 유물 분석을 통해 발해가 엄연한 독립국이었음을 증명해 냈다. 특히 당대 최고의 시인 이태백의 일화 등 중국 측 사료를 역이용해 발해의 독자성을 밝혀낸 그의 통찰력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2. 기와에 새겨진 128자, 침묵하던 역사를 깨우다
김 교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발해 유적에서 발견된 기와 문자를 해독해낸 것이다. 그는 침묵하고 있던 128자의 문자를 통해 발해인들이 우리 고유의 정신이 깃든 독자적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는 발해가 문화적으로도 완벽한 자립을 이룬 문명국이었음을 시사하며, 나아가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시원 문자인 '가림다(加臨多)'의 흔적을 학술적으로 추적하는 소중한 단초를 제공했다.

3. '역사 광복'을 향한 고독한 여정
그가 활동했던 홍콩은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지원도 부족하고 관심도 멀어진 환경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김 교수가 연구실에서 보낸 수많은 밤은 단순히 과거를 파헤치는 시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는 '역사 광복'의 시간이었다. 그는 발해사를 연구하며 "우리 민족은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사랑했던 위대한 민족"임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결론: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그의 횃불
김광석 교수는 2009년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 다는 소식, 그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김교수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연구 성과와 민족 사학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자신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타향에서 고군분투했던 한 학자의 노고를 기억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못다 한 발해사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왜곡된 고대사의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들었던 횃불을 이어받아야 한다. 홍콩의 고독한 학자 김광석,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역사 광복군'이었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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