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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교수가 밝힌 발해의 실체: 《옥진총담》과 고유 문자를 통해 본 자주독립국론

당나라 최고의 천재 이백이 발해의 국서를 해독하고, 그들을 고구려와 같은 '외국'이라 칭했던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김광석 교수는 《옥진총담》 속에 숨겨진 이 짧은 일화에서 발해의 독립적 주권과 고유 문자의 실체를 찾아냈습니다. 잊혀진 황제국 대진국(발해)의 참모습을 일깨우는 김 교수의 독보적인 역사 해석을 소개합니다.

 

[번역] 발해족의 형성과 사회 형태 분석에 관한 논증
작성자: 김광석 (2008-05-31)

나는 과거에 다음과 같은 논증을 펼쳤다. 이(태)백의 시문과 《자치통감》의 사료를 통해 발해사의 한 지점을 찾아낸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것은 "이백은 발해를 고구려 및 백제와 동일하게 보았으며, 고구려와 발해는 같은 민족이다"라는 점이다.

1989년 홍콩의 잡지 《삼언이박의 세계(三言二拍的世界)》의 시정풍정(市井風情) 편을 보면, 《옥진총담(玉塵叢叢談)》을 인용해 이백이 발해 문자를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혁만서(嚇蠻書)》의 기록에는 이백이 발해를 고구려, 백제와 같이 보았다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백은 발해를 (당나라와는 다른) 외국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주 : 혁만서는 《李謫仙醉草嚇蠻書》를 뜻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사》(1977, 교토)를 보면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국(國)'이라는 글자는 자주성을 내포한다. 이상의 논증을 통해 발해국은 자주성을 가진 독립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백의 시 〈고구려(高句麗)〉에서 지칭하는 고구려는 사실 발해국을 의미한다. 이는 이백이 발해 인민을 고구려 인민과 동일하게 보았음을 뜻한다. 당시 당나라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발해를 외국으로 여겼다.

고려인들 역시 발해를 같은 민족으로 보았다. 《자치통감》 후진기(後晉紀) 제왕(齊王) 개운 2년(945년) 10월과 11월의 기록, 그리고 송백(宋白)의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태조(왕건)는 "발해는 우리의 혼인국이며, 발해는 본래 우리 친척의 나라다"라고 하였다. 이는 고려와 발해가 동족임을 보여준다.

《제왕운기》에도 "고려 태조 8년(기유년), (발해 사람들이) 나라 전체가 무리를 지어 왕경(개경)으로 귀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고려와 발해가 동족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증 결과, 남북국 시대(신라와 발해)가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신라와 고려에 있어 발해는 동일 민족이었다. 당나라 사람들 또한 발해를 외국으로 보았는데, 이는 나의 핵심 논증이다. 당나라 사람들이 발해를 고구려나 백제의 관점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다. 이백은 20세 이후 사방을 유람하며 민간의 여론에 익숙했기에 저잣거리의 말을 시문에 반영했다. 즉, 이백이 발해를 고구려·백제와 같이 본 것은 당시 당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해동성국(발해)'의 특산물인 금화(金花)와 백마(명마)는 발해의 상징이다. 이백은 발해 문자를 알았고 발해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정혜공주가 당나라 태학에서 2년 동안 이백의 시문학을 공부했을 정도로 이백은 발해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백의 시 〈고구려〉에 금화, 백마, 해동 등의 시어가 등장하는데, 이 시가 지어진 8세기 초중반 동북 지역에는 이미 고구려의 깃발이 아닌 발해의 깃발만이 있었다. 따라서 이 시의 고구려는 발해를 가리킨다. 발해의 핵심 세력은 예맥족과 고구려 계통이었고, 발해의 언어는 고구려어였으며, 복식과 풍습 또한 고구려와 같았다.

중국 문학사에서 이백은 위대한 시인이지만, 술을 즐겼다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들은 그를 '건달'이나 '술꾼'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보를 포함한 한·중의 많은 시인은 술을 즐겼다. 나 역시 25세 이후 시를 지으며 술을 즐겼는데, 시인이 술을 마신 뒤 내놓는 평론은 매우 솔직한 법이다.

한민족과 한족(漢族)의 형성 과정 차이: 한족(漢族)은 네 단계에 걸쳐 형성되었다.

진한 시대: 화하족 중심 (삼묘, 동이, 남만, 서융, 북적 융합)

수당 시대: 흉노, 저, 강, 동호, 남만, 서남이 융합

송명 시대: 돌궐, 거란, 여진, 몽골 융합

민국 시대: 만주, 회, 강, 장, 몽골, 묘족 등 25개 종족 융합

그러나 이 한족의 형성 과정에는 고아시아어족, 예족, 맥족, 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족, 말갈족이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1991년 홍콩에서 발표한 『발해족의 형성과 그 사회 형태 분석』(71p)에 따르면, 한민족(韓民族) 형성의 핵심 세력은 고아시아어족, 예족, 맥족, 삼한이며, 한민족은 다종족 연합체로 형성되었다. 마찬가지로 발해족 형성의 핵심 세력은 고구려, 백제, 신라, 예맥계 속말말갈, 고아시아 숙신계 말갈족, 동호계 및 일부 한인(漢人)이다. 발해족 또한 다종족 연합체로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동이족은 하나의 종족으로 간주된다. 의견이 있다면 논증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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