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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해자 |
‘유(儒)’라는 글자는 오늘날 흔히 학자나 선비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기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본디 ‘儒’는 학문이 아니라 장례(葬禮)와 깊이 맞닿아 있던 말이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儒’를 이렇게 풀이한다.
“儒, 柔也, 術士之稱.”
곧 ‘유(儒)란 부드러움을 뜻하며, 술사(術士)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술사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다. 수단과 방법, 즉 ‘술(術)’을 구사하는 사람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존재였다. 당시의 술사는 곧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 다시 말해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산 자를 위로하며, 인간과 하늘을 잇는 역할을 맡은 이들이었다.
그래서 장례사는 도사(道士)와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는 신통한 사람’으로 여겼다. 삶과 죽음, 하늘과 인간의 경계를 오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儒’라는 글자에는 애초부터 부드러움과 중재, 그리고 초월적 질서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접어들면서 ‘儒’의 의미는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장례와 의례를 담당하던 존재는 ‘예(禮)를 아는 사람’으로, 다시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공자가 유가(儒家)를 일으키며 사상 체계를 세운 이후, ‘儒’는 완전히 새로운 지위에 오른다. 학자가 되고, 선비가 되며, 마침내 유학(儒學)과 유교(儒敎)라는 거대한 사상 전통의 이름이 된다.
하지만 이 변화의 이면에는 오래된 경고가 존재한다.
기원전 1833년, 고조선 최고의 선사(仙士)로 전해지는 유위자(有爲子)는 이렇게 예언했다.
“천 년 후, 광유(狂儒)가 만연하리라.”
광유란 글자 그대로 ‘미친 유생’, ‘미쳐버린 선비’다. 겉으로는 유(儒)의 외형을 갖췄지만, 그 정신은 상실한 존재를 뜻한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 본래의 역할은 잊은 채, 지식과 말, 권위와 형식에만 매달리는 존재들에 대한 경고였다.
이 예언은 삼천팔백여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혜는 보이지 않고, 말은 많지만 책임은 사라진 시대. 유(儒)가 본래 품고 있던 ‘부드러움’과 ‘중재’, 그리고 생과 사를 관통하는 깊이는 어디로 갔는가?
‘유’는 처음부터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도,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인간과 하늘 사이에서 무게를 감당하던 존재였다. 그 의미를 잃은 순간, 유는 쉽게 광유로 전락한다.
깜박 잊은 우리말, 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우리 역사는 지금도 묵묵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유(儒)’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한문수/ 역사칼럼니스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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