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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보물이고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 문헌학의 이중잣대

최근 문화재청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 자료는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온 뒤 작성한 가장 초기의 원고(고본)로, 우리가 흔히 아는 『열하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변천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초고본이 결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손들과 문인들에 의해 첨삭과 보완, 재구성이 반복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사본(베껴 쓴 책)이 만들어졌다. 학계는 오히려 이러한 ‘수정과 보완의 과정’이 담겼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것이 실학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전사(傳寫)와 보완, 왜 ‘환단고기’에만 가혹한가?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열하일기』의 전사본과 초고본에서 발견되는 ‘내용의 수정’과 ‘후대의 보완’은 기록 문화의 가치로 인정받는 반면, 왜 『환단고기』의 전승 과정은 ‘조작’과 ‘위서’의 근거로 치부되는가 하는 점이다.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를 비판할 때 늘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세운다.

“1911년 계연수의 원본이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후대에 이유립 등에 의해 내용이 첨삭되거나 현대적 용어가 섞여 있다.”

하지만 이번 『열하일기』의 사례를 보라. 고문헌이 저자의 손을 떠나 세상에 퍼질 때, 그 과정에서 전사(傳寫)가 일어나고 문중이나 제자들에 의해 보완되는 것은 당시의 보편적인 기록 문화였다. 『열하일기』 역시 박지원의 친필 초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내용의 출입이 발생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를 이유로 『열하일기』가 가짜라고 말하지 않는다.

원본이 없으면 역사도 없는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국보급 사서들—『삼국유사』나 『삼국사기』조차—저자의 당대 원본이 아닌, 수백 년 뒤에 다시 찍어낸 중간본(重刊本)이 대부분이다.

열하일기: 초고본이 발견되자 "집필 과정의 역동성을 보여준다"며 보물로 지정.
환단고기: 전승 과정에서의 보완과 정리를 이유로 "원본이 없으니 믿을 수 없다"며 사료 가치를 원천 봉쇄.

이것이 바로 주류 학계가 가진 ‘학술적 이중잣대’이자 ‘선택적 실증주의’의 민낯이다. 그들은 『환단고기』가 담고 있는 거대한 상고사의 진실이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세워놓은 ‘식민사학의 틀’이 깨질까 두려운 것인가.

기록의 본질은 ‘정신’에 있다
『열하일기』 초고본이 보물이 된 이유는 박지원이 북경에서 본 것을 기록하며 고민했던 그 ‘실학 정신’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시원 역사와 홍익인간의 통치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는 어떠한가?

비록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시절을 거치며 원본이 소실되고, 전수자의 손을 거치며 문장이 다듬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을지라도, 그 안에 흐르는 ‘한민족의 시원 정신’은 변함이 없다. 문헌의 전승 과정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오로지 ‘위서’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골몰하는 태도는 학문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제는 『열하일기』에 들이대는 그 유연하고 합리적인 잣대를 『환단고기』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식민사학의 잔재를 걷어내고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찾는 진정한 학술적 정의(正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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