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일 매일경제 칼럼은 『환단고기』를 파시즘을 소환하는 ‘흑마술’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필자는 묻고 싶다. 과연 누가 진짜 파시스트인가? 단순히 잃어버린 상고사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광기'나 '환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우리 학계 내부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학문적 파시즘'의 민낯은 아닌가.
[참고] ‘환단고기’의 헛된 환상…우리 안의 파시즘을 소환하는 흑마술 (2026.01.02. 매일경제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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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파시즘'의 어원은 '묶음(Fasces)'이다. 칼럼은 환단고기를 읽는 대중을 파시스트로 몰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들의 입을 '위서론'이라는 단단한 밧줄로 묶어버리는 기득권 사학계의 행태에 가깝다. 주류 이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료의 가치를 원천 봉쇄하고, 이를 탐구하는 국민을 선동된 대중으로 치부하는 태도야말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둘째, '흑마술'은 환단고기가 아니라 식민사학이 부린 술책이다. 칼럼은 환단고기를 흑마술이라 표현했으나,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를 한반도 북부로 한정 짓고 스스로를 '피지배의 역사'로 규정하게 만든 식민사관이야말로 민족의 정신을 잠재운 '심리적 최면술'이었다. 환단고기는 그 최면에서 깨어나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과 철학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난도질당하고 지워진 역사의 파편을 맞추는 정당한 학술적 노력을 ‘마술’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셋째, 환단고기가 지향하는 가치는 파시즘의 폭력성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파시즘은 배타적 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타자를 억압한다. 그러나 환단고기의 핵심 사상인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는 인류 보편의 평화와 공존을 지향한다. 이를 두고 나치즘을 운운하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자,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모든 행위를 잠재적 범죄로 취급하는 '역사적 패배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역사는 고정된 박제가 아니다.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고 새로운 해석이 더해질 때 역사는 생명력을 얻는다. 칼럼니스트가 우려하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역사를 되찾으려는 국민의 열망이 아니라, 자기들의 학문적 성역을 지키기 위해 낙인찍기와 배제를 일삼는 독선적인 태도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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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AI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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