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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얼굴로 70년을 살다… ‘국민배우’ 안성기, 스크린 너머의 별이 되다
영정사진은 고인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포스터 사진이다

영화가 곧 삶이었던 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2월 30일 자택에서 식사 도중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수년간 투병해왔다.

1952년 한국전쟁의 피란 통에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안성기는 여섯 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부친 안화영 씨가 김 감독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 연기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1960년대까지 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천재 아역’으로 불렸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10대 후반 배역이 줄며 중학교 3학년 때 작품을 끝으로 연기계를 떠났고, 이 공백기는 훗날 그가 소시민의 삶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해 ROTC로 복무했던 그는 제대 후 평범한 직장인을 꿈꿨지만, 취업의 문이 번번이 막히면서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그리고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으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으로 재등장했다. 이 작품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임권택, 배창호, 박광수, 정지영 등 1980~90년대 한국 영화의 변혁을 이끈 감독들의 핵심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만다라’,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깊고 푸른 밤’, ‘태백산맥’, ‘하얀 전쟁’ 등 그는 시대의 고민을 품은 영화들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대중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작품으로 사랑받았고, 2003년 ‘실미도’로 한국 영화 최초 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거지에서 왕, 킬러에서 소시민, 성직자에서 권력자까지, 안성기는 특정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배우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집계 기준 출연작만 180여 편. 유실된 작품까지 포함하면 200편에 가까운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사의 연대기였다.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은 그의 데뷔 60주년 특별전을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이라 명명했다.

스크린 밖에서도 그는 ‘영화인’이었다. 스크린쿼터 수호 활동,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및 부집행위원장,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영화 생태계 보호에 앞장섰다. 정치권의 수차례 제안에도 “현장에서 배우로 끝까지 가겠다”며 고개를 저었고, 성실함과 절제된 삶으로 단 한 번의 스캔들 없이 존경을 받았다.

2019년 혈액암 진단 이후에도 그는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노량: 죽음의 바다’에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된 뒤에도 영화인 자녀 장학사업과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을 이어갔다. 30년 넘는 유니세프 활동 공로로 2023년 4·19 민주평화상을 받았고, 같은 해 정부는 그에게 문화예술 분야 최고 훈격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안성기는 생전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라디오 스타’를 꼽으며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것은 곧 배우 안성기 자신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과잉 없이 담백한 연기로 시대를 살아온 보통 사람의 얼굴을 스크린에 남긴 그는 그렇게 한국 영화의 한 시대를 지켜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9일 오전, 장지는 경기 양평 별그리다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스크린을 떠났지만, 그의 얼굴과 눈빛은 한국 영화의 시간 속에 영원히 남는다. 안성기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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