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한사랑의 윤창열 이사장(대전대 명예교수)이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환단고기 진서론’의 두 번째 강의를 공개하며, 학계의 고질적인 ‘위서 논쟁’을 종식시킬 결정적 유물로 ‘건흥 5년명 금동석가여래입상(建興五年銘 金銅釋迦如來立像)*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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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열 교수는 이날 영상에서 “환단고기가 위서냐 진서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지름길은 이 책이 가진 위대성과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며, “기존 강단사학계가 풀지 못하거나 엉터리로 해석하는 문제를 환단고기가 명쾌하게 풀어낼 때 그 진정성이 객관적으로 증명된다”고 강조했다.
■ 강단사학의 미스터리, ‘건흥(建興)’ 연호의 정체
사건의 발단은 1915년 충북 중원군(현 충주시) 노은면 탑골에서 발견된 한 점의 금동석가불상이다. 이 불상의 광배 뒷면에는*‘건흥 5년 세재 병진(建興 五年 歲在 丙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제작 연대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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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興五年 歲在丙辰 佛弟子 淸信女 上部 兒庵 造釋迦文像 願生生世世 値佛聞
건흥 5년 병진년에 불제자 청신녀인 상부의 아암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을 만드오니 원컨대 태어날 때마다 부처님의 진리를 만나 불법을 듣고자 기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건흥’이라는 연호가 『삼국사기』 등 기존 관찬 사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주류 강단사학계는 일본 학자 흑판승민(黑板勝民)의 주장을 따라 596년(신라 진평왕 시대)으로 추정하거나, 536년경 신라 불상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혼선을 빚어왔다.

윤 이사장은 “최고의 불상 전문가들조차 명확한 근거 없이 536년 혹은 596년이라며 소설을 쓰고 있다”며, “우리 역사를 식민사학의 틀에 가두려다 보니 명문에 기록된 ‘병진년’과 ‘건흥’이라는 연호를 맞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환단고기』가 풀어낸 1,600년 전의 진실: “건흥은 장수왕의 연호”
윤창열 이사장은 이 난제의 해답이 오직 『환단고기』에만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에 따르면, “장수홍제호태열제(장수태왕)가 즉위하여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쳤다(開建興)”는 기록이 명시되어 있다.
고구려는 왕이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삼는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했다. 광개토태왕이 서거한 412년(임자년)에 장수왕이 즉위하여 이를 ‘건흥 원년’으로 삼으면, 건흥 5년은 정확히 416년이 되며 그해의 간지는 명문과 일치하는 ‘병진(丙辰)년’이 된다.
- 412년 임자년 장수태왕 1년
- 413년 계축년 장수태왕 2년
- 414년 갑인년 장수태왕 3년
- 415년 을묘년 장수태왕 4년
- 416년 병진년 장수태왕 5년

윤 이사장은 “412년(임자), 413년(계축), 414년(갑인), 415년(을묘)을 거쳐 416년이 딱 병진년이 된다”며, “이는 건흥 5년명 불상이 신라가 아닌 고구려 장수왕 시대(서기 416년)에 제작된 것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 한국 최초의 기년명 불상... 제 가치 못 찾는 현실 안타까워
결국 이 불상은 서기 416년에 제작된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년명(제작 연대가 기록된) 불상이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지 불과 44년 만에 민간(청신녀 등)에서 금동불상을 제작할 정도로 불교 문화가 융성했음을 보여주는 국보급 유물인 셈이다.
그는 “환단고기라는 기록이 없었다면 이 불상은 영원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았을 것”이라며,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위서라고 매도하는 학계의 태도는 ‘광인의 한마디에서도 취할 것이 있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만도 못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윤 이사장은 “현재 청주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 불상을 직접 찾아가 조상들의 숨결과 환단고기의 진실을 확인해 보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환단고기를 통해 왜곡된 한국 상고사를 바로잡는 행보를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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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밝혀낸 한국 최초의 불상은 금동석가삼존불 (환단고기 진서론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FDH50xrX1TI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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