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경량 교수는 1월 7일 시사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환단고기〉를 부정하며 그 이유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단정적인 주장을 펼쳤다. 주류 사학계의 전형적인 선민의식과 오만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그 ‘사실’은 과연 누구의 눈으로 본 사실인가?
‘식민의 안경’으로 본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기 교수가 말하는 ‘사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일제 식민사학이 있다.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을 도려내고, 한반도 내로 우리 역사를 가두는 ‘반도사관’을 정립했다. 작금의 주류 사학계가 소위 ‘문헌고증학’이라는 미명 하에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세우는 근거들—지명, 관직명, 용어의 근대성 등—은 사실상 역사 전승의 본질을 외면한 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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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박제된 문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민족의 기억과 그 기억이 투영된 사서는, 필사와 전수 과정에서 당대의 어휘가 섞일 수밖에 없다. 이를 빌미로 사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껍데기가 낡았다고 해서 그 안의 보물까지 쓰레기통에 던지는 격이다. 진정으로 사실을 추구하는 학자라면, 그 껍데기 안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삼성조 시대’의 실체에 주목했어야 한다.
유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홍산문화의 경고
기 교수는 〈환단고기〉의 내용을 ‘창작’이라 폄훼하지만, 정작 땅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실’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홍산문화와 대륙 곳곳의 적석총, 비파형동검, 옥기 유물들은 〈환단고기〉가 묘사하는 고대 문명의 실존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주류 사학계는 이 거대한 고고학적 성과를 우리 역사와 분리하기 위해 애써 외면하거나 ‘중국 문명의 일부’로 방관한다. 문헌이 없어서 역사를 인정할 수 없다던 이들이, 이제는 문헌이 있어도 위서라 부르고, 유물이 나와도 우리 것이 아니라 부정한다. 이것이 기 교수가 말하는 ‘경량급’ 사실의 실체인가?
식민사학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허구’다
우리가 식민사학을 거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주장,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주장, 우리 역사의 시작이 위만조선부터라는 주장, 임나일본부설의 변종인 임나 한반도 가야설 등은 모두 일제가 조작한 ‘허구’의 산물이다.
기 교수를 비롯한 주류 학자들은 자신들이 식민사학의 계승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일제가 그어놓은 ‘반도’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사실을 찾으려 하는 한, 그들은 결코 식민 사관의 망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환단고기〉를 부정하기 위해 동원하는 그들의 논리야말로, 민족의 원형을 파괴하려 했던 조선총독부 학자들의 논법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
이제 ‘대한사관’의 눈으로 사실을 직시하라
역사는 민족의 혼이다. 혼이 없는 육체는 송장에 불과하듯, 올바른 사관이 없는 역사학은 기술적 나열에 불과하다. 기 교수의 가벼운 설전은 잠시 대중의 눈을 가릴 수 있을지언정, 유구한 세월을 버텨온 우리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가짜 ‘사실’의 프레임을 깨부수고, 대륙을 호령하며 인류 문명의 시원을 열었던 밝은 역사, 즉 ‘환단(桓檀)’의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식민사학을 거부하고 대한의 사관을 바로 세워야 할 단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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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 〈환단고기〉 거부할 이유 단 하나, “사실이 아니기 때문” 2026.01.07
시사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7737?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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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