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은 태백교를 만들어 교주가 된다." (기경량, KPI뉴스 , 2025-12-26)
"이유립은 태백교라는 종교를 만들었는데 1960년대부터 교단 내 소식지를 냈다. 『환단고기』에 있는 내용은 거기 다 있다. 다시 말해 종교용으로 창작한 책이다." (기경량,중앙일보, 2025.12.20)
"대종교 쪽에 원래 있다가 나와서 자기가 교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게 태백교라는 교를 만들었고 지금은 없습니다. 자기가 교주가 됐죠. 교주가 됐고 포교해야 되잖아요. 그럼 경전이 필요하잖아요. 환단고기는 사실 그 경전으로서 만들어진 거라고 우리가 볼 수 있겠고요...." (기경량,CPBC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2025,12.16)
이 책은 이유립이 창교한 태백교의 종교문학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이유립은 유사종교 태백교의 창시자이며 『환단고기』는 유사종교 태백교를 위하여 이유립이 내놓은 경전 성격의 유사(類似) 「역사서」로 볼 수도 있다. (이양재, 『통일뉴스』, 2022. 8. 2.)
역사학계 일각, 그리고 재야 사학을 비판하는 일부 인사들이 『환단고기』를 공격하는 방식은 늘 한결같다. 책 속에 담긴 사료적 가치나 천문학적 증거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보다, 책을 세상에 알린 인물을 도덕적으로 흠집 내거나 ‘비이성적인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위서론자들이 “이유립은 태백교의 교주이며, 환단고기는 그 종교를 위해 급조된 경전”이라는 논리 역시 이러한 ‘메신저 공격하기’의 전형이다. 이유립 선생을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몰아세우며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로 매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이유립 선생의 삶과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한 악의적인 프레임 씌우기에 불과하다.
첫째, 종교의 본질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학술 단체’를 종교로 둔갑시켰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종교 단체의 운영 방식과 이유립 선생의 모임은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일반적인 종교가 교단의 유지를 위해 정기적인 예배나 의례를 중시하고 신앙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다지는 것과 달리, 선생이 이끌었던 모임에는 그러한 종교적 시스템이 부재했다.
그들은 『환단고기』에 기록된 대영절(3월 16일)이나 개천절(10월 3일) 같은 국경일에 모여 선조들의 뜻을 기렸을 뿐, 개인의 기복(祈福)이나 구원을 위한 종교 의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모임의 실체는 ‘단단학회(檀檀學會)’라는 명칭이 웅변하듯,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고 국통맥을 잇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는 학술 결사체였다.
이를 두고 종교라 규정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마치 유교 경전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길러낸 서당의 훈장님을 두고 ‘공자교 교주’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고유의 역사와 정신을 가르친 스승을 종교 지도자로 매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대전 은행동 시절의 삶이 증명하는 것은 ‘교주’가 아니라 ‘교사’의 모습이다.
위서론자들은 1963년 이유립이 태백교를 창교했다고 주장하지만, 1963년부터 1976년까지 그가 머물렀던 대전 은행동의 오래된 적선 가옥을 보라. 2층은 이유립 선생의 비좁은 집필실이었고, 아래층은 생활 공간이었다. 필자도 여러번 협소한 이 삶의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그곳을 드나든 이들은 신도들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1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었다. 어느 교주가 허름한 집에서 학생들에게 무료로 역사를 가르치며 가난한 삶을 자처한단 말인가? 선생은 생전 자신이 ‘교주’로 불리는 것을 질색했다. 그가 말한 ‘태백교(太白敎)’ 혹은 ‘태백진교’의 ‘교(敎)’는 종교(Religion)가 아니라 ‘가르침(Teaching)’을 뜻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가르침인 ‘풍류’와 ‘신교’의 맥을 잇겠다는 철학적 선언을, 서구적 잣대의 종교 단체 창설로 왜곡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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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은 목척시장에 있는 1,2층 적산가옥이었는데 지금도 그 집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도. 그 집에 1층은 3평 정도 되는데 2층은 선생님이 서재로 쓰고 그 서재 이름이 한암당이었습니다. 1층에서 선생님 앞에 앉으시고 처음에는 저 혼자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선생님 말씀 배우는 게 아주 유익하고 좋아서 주위 친구들을 모아가지고 11명이 같이 공부하게 됐습니다." (양종현 선생 증언)
사진의 이유립 선생이 전통 의복과 같은 예식 복장을 하고 제사를 지내 선조를 기리는 예를 갖춘 모습을 두고, 종교적 복식이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종친회의 시제나 제사를 가보면 더 화려면 복장들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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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비판 세력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덩어리다. 그들은 『환단고기』를 공격하기 위해 이유립 선생에게 그때그때 다른 탈을 씌운다. 어제는 독립운동가를 ‘친일파’라고 몰아세우더니, 오늘은 역사학자를 ‘사이비 교주’라고 비난한다.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오직 『환단고기』에 생채기를 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말이라도 무차별적으로 쏟아낸다. 결국 이러한 행태는 그들의 주장이 건전한 학술 비판이 아니라, 저열한 정치 공세이자 감정적 비난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환단고기』에는 고조선 역대 47분 단군의 구체적인 재위 연수와 행적, ‘오성취루’와 같은 정교한 천문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환국과 배달을 거쳐 단군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국통맥(國統脈)이 온전히 살아 숨 쉰다. 나아가 고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중국, 일본과의 정세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사료를 두고 단지 특정 종교를 위해 1979년에 급조된 창작 소설,종교서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텍스트 속에 담긴 방대한 실증 데이터와 철학적 깊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지적 게으름의 소산일 뿐이다
이유립 선생은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고난의 삶을 감내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였다. 그를 사이비 교주로 둔갑시켜 『환단고기』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이제 멈춰져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이 더럽다고 비난만 할 것인가? 이제는 손가락질을 멈추고, 그가 목숨을 걸고 전하려 했던 ‘역사의 진실’이라는 달을 쳐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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