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사학계 일부에서는 여전히 『환단고기』의 편찬자 운초 계연수 선생을 유령 취급하곤 한다. 그의 존재를 입증할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진 대신 남겨진 두 장의 투박한 초상화, 그리고 동시대 다른 계(桂)씨 인물들의 사진이 그의 실존을 웅변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복원된 ‘역사의 몽타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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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연수 선생의 초상화 (왼쪽은 오일룡, 오른쪽은 양종현 선생이 고등학생일때 그린 초상화다) |
여기 두 장의 그림이 있다. 사진이 없던 시절, 제자였던 이유립 선생의 구술을 듣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만화가 지망생인 오일룡(오일선)과 양종현이 그려낸 운초 계연수 선생의 모습이다. 하나는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고 (오일룡 작), 다른 하나는 삭발을 한 모습이다(양종현 작). 얼핏 보면 다른 사람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두 그림을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가 있다. 바로 형형한 안광(眼光)과 타협 없이 곧게 뻗은 콧날, 그리고 짙은 눈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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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유립 선생이 스승을 가공해 내려고 했다면, 차라리 그럴싸한 가짜 사진을 조작하거나 전문가를 시켜 하나의 완벽한 영정 그림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스승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아이들은 각자의 상상력을 더해 서로 다른 화풍으로 그려냈다. 설명(Input)은 하나였으되, 해석(Output)이 둘로 나뉜 이 상황이야말로, 이유립 선생이 ‘실제 모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이다. 구체적인 목격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디테일이 그림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몽타주가 보여주는 골격이 당시 실존했던 다른 계(桂)씨 인물들의 사진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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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1880 ~ 1959)과 소설가 계용묵 선생(1904 ~ 1961) 의 사진을 보자. 계용묵 (1904 ~ 1961)은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 단편소설 <백치 아다다>가 있다. 계봉우 선생(1880년생)은 운초 계연수 선생(1864년생 추정)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고, 계용묵 선생(1904년생)은 그 아들벌 되는 세대다.
이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북방계의 강인한 골격이 발견된다. 툭 불거진 눈썹뼈, 굵고 선명한 T존, 그리고 남성적인 하관. 이것은 ‘계씨 가문’이 공유하는 유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학생들이 그린 운초 선생의 초상화는 이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갓을 쓴 초상화의 날카로운 지성은 소설가 계용묵의 예민한 눈매를 닮았고, 민머리 초상화의 묵직한 위엄은 독립운동가 계봉우의 강인한 하관을 닮았다. 계연수 선생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들이, 단지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곧았다”는 설명만 듣고 그려낸 그림이 어떻게 우연히 계씨 가문의 유전적 특징과 일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조작이 아니라, 이유립 선생의 기억이 정확했음을 증명하는 ‘유전학적 알리바이’다.
초상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두 학생이 그려낸 것은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유립의 뇌리에 박힌, 일제의 추적을 피해 역사를 지키려 했던 한 투사의 강렬한 눈빛을 현상(現像)해 낸 결과물이다.
이제 “사진이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식민사학의 낡은 레퍼토리는 거두어야 한다. 두 장의 몽타주와 계씨 가문의 사진들은 퍼즐 조각처럼 맞물려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운초 계연수는 그곳에 실존했고,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 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그림들은 조작된 위인의 초상이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몽타주’다.
계연수 선생 초상화를 그린 양종현 선생은 아래와 같이 초간본 환단고기를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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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에 환단고기를 본 건 1960년대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 댁에서 그 계연수 선생이 목판 인쇄를 한 걸 그걸 봤습니다. 책을 너무 소중하게 다뤄서 그 오랫동안 갖고 계시면서 책이 깨끗했습니다. 그 특징이 있습니다. 그 모양은 색깔도 비슷하고 엮은 것도 같은데 다만 환단고기라고 이렇게 써 있습니다. 환단고기. 당시 선생님께서는 책의 엮은 끈이 떨어져가지고 그걸 하려고 애쓰는 걸 보고서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하고서 그걸 책을 엮어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양종현 선생 증언)
책 끈은 끊어졌을지언정, 역사를 지키려는 마음은 끊어지지 않았다. 스승은 책을 생명처럼 아꼈고, 제자는 떨어진 끈을 정성껏 다시 묶었다. 그 사소해 보이는 일화 속에 역사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
보지 않은 자들은 의심하지만, 본 자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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