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부여가 우리 역사의 대통(大統)"... 해창 송기식과 단재 신채호, 역사관도 '하나'였다
-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속 '북부여 정통론'과 정확히 일치...독립운동가 공통 역사관
- 환단고기 역사관, 후대 창작 아닌 당대 최고 지성들의 '구국 철학'임이 증명돼
일제강점기인 1912년 국내 유림의 거두 해창 송기식(海蒼 宋基植) 선생이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이끌던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 선생에게 보낸 서신이 공개되어 학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 서신에서 확인된 “북부여사(北扶餘史)가 우리 역사의 대통(大統)”이라는 구절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주창한 부여 중심의 역사관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는 당시 독립운동 진영이 공유했던 ‘국통맥(國統脈)’이 분명한 인식과 합의 속에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오늘날 주류 강단사학계의 통설과 달리, 『환단고기』가 전하는 역사관이 당대 독립운동가들의 핵심 사상과 긴밀히 맞물려 있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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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해창 송기식,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
◆ 해창과 단재의 이구동성... "위만은 강도, 북부여가 진짜 적통(嫡統)"
이번에 공개된 서신에서 해창 송기식 선생은 만주에 있는 석주 선생에게 역사 편찬에 대해 문의하며 비장한 심경을 토로한다.
"역사 편집에 관하여 김군에게 물었습니다만, 북부여사(北扶餘史)는 우리 역사의 대통(大統)인데 고증할 만한 곳이 있는지요?" (北扶餘史, 是吾史之大統, 而有可考據處否)
해창 선생의 이러한 인식은 동시대에 활동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과 궤를 같이한다. 단재는 후일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단군조선이 망한 뒤 그 정통성이 위만에게 간 것이 아니라, 해모수가 건국한 '북부여'로 이어졌음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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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는 위만이 준왕을 몰아낸 것을 '강도 짓'으로 규정하며 위만조선을 우리 국통맥에서 배제했다. 대신 [단군조선 → 북부여 → 고구려]로 이어지는 계보를 우리 역사의 정통으로 세웠다. 즉, 해창 선생이 서신에서 언급한 '북부여 대통론'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에 맞서 우리 역사를 지키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공통된 '역사 광복' 강령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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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사학 정면 반박... 환단고기 역사관의 실증
그동안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일부 학계에서는 북부여를 중심으로 한 역사관이나 『환단고기』의 내용을 20세기 후반의 창작이라 폄하해왔다. 그러나 1920~30년대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해창과 석주, 그리고 단재가 모두 '북부여'를 우리 역사의 뿌리로 인식하고 심각하게 연구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대한사랑 관계자는 "이번 사료는 해창 송기식과 한암당 이유립의 교류와 더불어, 환단고기의 역사관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며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공유되었던 '독립운동가의 정통 역사관'이 바로 북부여 대통론"이라고 강조했다.
◆ "밖에서 움직이고 안에서 호응한다"... 피로 쓴 독립 전략 '외동내응'
서신에는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독립투쟁의 전략도 담겨있다. 송기식 선생은 "사기(기회)가 있기를 기다려 밖에서 움직이고 안에서 호응하는(外動內應) 거사를 하려 한다"고 밝히며, 만주의 무장 독립군(석주)과 국내의 지식인 세력(해창)의 긴밀한 연대를 시사했다.
또한 천도교 세력과의 연대를 언급하며 "박·오·권·최 제공이 모두 일시의 걸물이니 반드시 세한(어려운 시기)에 서로 의지할 기약이 있을 것"이라며 종교를 초월한 민족 대동단결의 의지를 내비쳤다.
◆ 일제의 역사 말살... "피를 토할 노릇(噴血事)"
그러나 서신 곳곳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처절한 아픔이 묻어난다. 송기식 선생은 북부여사 등 역사 자료를 구하고 싶어도 일제의 감시망(관기, 關譏)이 너무나 심해 자료를 주고받을 수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다만 관문의 살핌이 심히 위태로워 우편으로 부쳐 왕래할 수 없으니, 이 또한 한바탕 피를 토할 일일 뿐입니다(亦一噴血事耳)."
'피를 토한다'는 표현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혼을 빼앗기 위해 사료 유통을 얼마나 철저히 통제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역사를 지키려던 선열들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북부여사'를 찾으며 국통을 바로 세우려 했던 해창과 단재, 그리고 석주의 외침이 100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식민사학 청산이라는 묵직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해창 송기식의 문집 『해창집(海窓集)』 「의(義)」편에는 1912년에 작성된 〈답석주이장(答石洲李丈)〉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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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창집(海窓集)』 「의(義)」, 〈답석주이장(答石洲李丈)〉(1912) [원문]
於海隅鯫生, 若是尤不勝感戢也. 伏審遼野風霜燕申, 氣力保 重, 爲國自愛, 實爲蒼生祝也. 基植鳳塾之設, 昔日所命, 而尙今 維支頗有地方之進, 而智窮力盡, 萬無振作之途, 且念科學敎 育, 不如宗敎敎育之多衆, 自客年與天道敎相往復, 其孫朴吳 權崔諸公, 皆一時之傑, 必有歲寒相仗之期, 而方此衆楚咻咻 之中, 作此排衆之擧, 果非鐵石腸不可堪也. 來汝之敎, 敢不惟 命, 是日夜所自期者, 而但八耋在堂, 屬望在身, 非無庭命, 依歸 之諾, 而朝晡在迫, 實不可冒國而忘家, 且未擧傳家之兒, 亦非 細事, 況一擧足禍網如織, 而且世事必費了多歲月, 是用十蹶 起而一蹋坐耳, 故竊欲爲犧牲於國, 不論內外地以達彼岸爲 的, 以待有事機而爲外動內應之擧, 或可爲國民一分子之責 否, 力量之大小, 此其分耳, 歷史編輯, 問於金君, 北扶餘史, 是吾 史之大統, 而有可考據處否. 但關譏甚危, 不可郵付往來, 亦一 噴血事耳, 淸閣依舊, 巋然過之, 每踧踖然, 餘敬尙存, 未知何日 江山更得主人而生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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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식 선생이 석주 이상룡 선생에게 보낸 서한 (번역글)
바닷가에 묻혀 사는 미천한 선비인 저(송기식)로서는, 이처럼 대해 주심에 더욱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요동 벌판의 찬바람과 서리 속에서도 연경에 계시며 기력을 잘 보존하고 계시니,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아끼시는 모습이 실로 창생을 위한 축복이라 하겠습니다.
기식(基植) 봉숙(鳳塾, 봉영서숙)의 설립은 예전에 분부하신 일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 유지와 운영에 적잖은 진척은 있었을지라도, 지혜는 다하고 힘은 다하여 더는 일으켜 세울 방도가 전혀 없습니다. 또 생각건대 과학 교육은 종교 교육만큼 대중을 모으기 어렵기에, 지난 해부터 천도교와 서로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손자인 박·오·권·최 여러 공들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인물들이니, 반드시 혹한의 세월에 서로 의지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처럼 여러 사람이 떠들며 압박하는 가운데에서 대중을 거스르는 이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과연 쇠와 돌 같은 심장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대가 보내준 가르침에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는 밤낮으로 스스로 기약해 온 바이지만, 다만 여든이 넘은 노모가 집에 계시고, 집안의 기대가 제 몸에 달려 있으니, 가정의 명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시중을 들어야 하는 처지에서, 나라를 위해 집을 잊는 일을 차마 감행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가문을 이을 자식을 두지 못한 일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며, 한 번 발을 옮기면 재앙의 그물이 빽빽한 세상에서, 세상일이란 반드시 오랜 세월을 소모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열 번 넘어지다 겨우 한 번 일어나 앉는 심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은밀히 나라를 위해 스스로 희생이 되고자 하여, 안팎의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저 언덕(피안)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때를 기다려 밖에서 움직이고 안에서 호응하는 거사를 도모한다면, 혹 나라와 백성을 위한 한 몫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힘의 크고 작음은 각자의 분수일 뿐입니다.
역사 편찬의 일은 김 군에게 물어보았는데, 북부여사는 우리 역사 대통의 맥이니, 과연 고증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단속과 의심이 몹시 위험하니, 우편으로 왕래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이 또한 피를 토할 심정입니다.
임청각(淸閣)은 예전 그대로 우뚝하여 세월을 견뎌내고 있으나, 매번 몸을 낮추어 조심스레 바라볼 뿐, 남은 공경의 마음은 여전합니다. 언제쯤 이 강산이 다시 주인을 얻어 생기를 되찾을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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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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