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험(검)성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2017년 제41회 전국고고학대회(11.3~4)에서 위만조선 왕험성의 위치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는 한 고고학자의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시끌하다. 지금의 평양이 위만 조선의 수도 왕험(검)성이라면 고고학적으로 위만조선의 유적, 유물이 나와야 하는 데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단 사학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데, 나는 이 당연한 사실에 충격 받는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중국도 왕험성은 만주에 있었다고 주장
중국 동북공정에서도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는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만주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요녕성 안산(案山)시 산하의 ‘태안(台安)현 손성자(孫城子)’가 위만조선의 왕험성 자리라고 보고 있다. 북한 지역까지 자국 영내라고 우기는 동북공정 학자들도 왕험성 자리는 요녕성 태안현이라는데,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만 “아닙니다. 왕검성 자리는 지금의 평양이고, 북한은 모두 중국땅입니다.”라고 우기는 블랙 코미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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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자들의 자존심
중국학자들이 왕험성을 요녕성 태안읍이라고 보는 것은 최소한의 학자적 자존심 때문이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1차 사료인 『한서(漢書)』 「지리지」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서』 「지리지」는 ‘낙랑군 조선현’과 ‘요동군 험독현’을 각각 다른 곳으로 보고 있는데, ‘요동군 험독현’을 위만조선의 도읍지라고 보고 있다. 후한(後漢:서기 25~220) 때인 서기 181년에 태산(泰山)태수를 역임한 응소(應劭)는 요동군 험독현이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라고 설명했다.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에 세운 왕험성이 ‘요동군’ 소속이므로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동북공정 추진 학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평양이 어떻게 요동일 수 있겠는가?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이 한반도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학자들은 『중국역사지도집』 이론서인 『석문회편(釋文滙編)』에서 “요동군 험독현만 조선반도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지금의 ‘요녕성 안산시 산하 태안현 손성자(孫城子)’를 위만조선의 도읍지에 세운 요동군 험독현 자리라고 비정한 것이다. 한나라 때의 요동군은 지금의 요동보다 수백 km 서쪽의 하북성 일대를 뜻하지만 지금의 요동이라고 쳐도 위만조선의 수도 자리에 세운 험독현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왕험성=요동’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학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우기는 것이 학문인가?
그런데 한국 강단사학계는 ‘위만조선의 도읍지=낙랑군=평양일대’라고 우긴다. 한국교원대학교의 송모 교수는, “평양 부근에 고조선 왕검성이 있었고, 그 뒤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왕검성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평양 지역인만큼 역시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다( 「고조선의 위치와 중심지 문제에 대한 고찰」, 2010)”라고 말했다. ‘합리적’, ‘순리’ 같은 비학문적 용어를 남발하면서 평양에 왕검성이 있었다고 우긴다. 중국 동북공정에서도 왕검성은 요녕성 태안읍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전문가라는 사람이 아무런 근거 사료도 없이 없이 평양이라고 우긴다. 고고학대회에서 토론자로 나오기로 했다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화여대 오모 교수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주장했다.
“위만조선이 멸망할 당시 수도는 왕검성임이 분명하며, 그 자리에 낙랑군 조선현이 설치되었으므로, 평양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낙랑군 관련 유적으로 통해 볼 때, ‘왕검성=낙랑군 조선현=평양’이 자연스럽게 인정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입론이 평양설이나 이동설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오○○,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오모 교수는 『낙랑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의 문장은 1차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다. 위 문장을 1차사료에 근거해서 바꾸면 괄호 안의 내용처럼 되야 한다.
“위만조선이 멸망할 당시 수도는 왕검성임이 분명하며, 그 자리에 낙랑군 조선현(요동군 험독현)이 설치되었으므로, 평양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낙랑군 관련 유적으로 통해 볼 때, ‘왕검성=낙랑군 조선현=평양’이 자연스럽게 인정(부인)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입론이 평양설이나 이동설의 근간(을 모두 무너뜨리는 근거가)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1차사료는 물론 동북공정, 그리고 현재 평양지역의 고고학유적, 유물 발굴결과도 ‘왕검성은 평양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1차사료를 보지 않는다. 보지 않는다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료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역사학이 아니다. 그러나 1차 사료를 부인하는 토대 위에서 세워진 이론이 얼마나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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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군,패수,요동군의 기본 위치 : 왕험성(위만조선의 수도)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는데 이것이 요동군 험독현이다 『한서(漢書)』 「지리지」 요동군 |
낙랑군도 지금의 평양에 없었다.
이제 ‘왕험성은 요동’에 있었지만 ‘낙랑군은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절충설에 대해서 검토할 때다. 낙랑군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의 고대 사료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문헌 사료는 전무하다.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 험독현에 대해서 중국 고대 역사학자인 신찬(臣瓚)은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라고 말했고, 당나라 때 주석가인 안사고(顔師古)는 “신찬의 설이 맞다”라고 동의했다. 낙랑군은 고대 요동에 있었던 험독현보다 서쪽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왕험성이 지금의 요동에 있었다면 낙랑군은 최소한 그 서쪽 만주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왕험성이 요동에 있는데,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이 중국 고대 사료가 말하는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이다.
국민들이 깨어나고 있다.
과거처럼 학계를 강단사학자들이 100% 장악하고 있으면 ‘왕험성=낙랑군=평양설’을 얼마간 더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누구든지 한문만 조금 알면 인터넷을 통해서 중국 1차 사료를 마음대로 검색하고, 확인해볼 수 있다. SNS 상에는 강단사학자들을 우습게 보는 수많은 고수들이 존재하고 있다. 강단사학자들이 지금껏 명맥을 유지해 온 주요 전략이 ‘역사의 우민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이 나라 상당수 국민들은 물론 대다수 정치가·관료들도 역사에 무지하게 되었다. 이런 무지의 토대 위에서 국민들의 역사관련 세금을 독식하면서 생명을 연장해왔지만 이 문제에 경각심을 가진 국민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저 앞에서 중국 1차사료를 토대로 강단사학계를 조롱하고 있는데, 이들만 박사 학위나 교수 직함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며 귀를 닫고 우기는 형국이다. 수명을 다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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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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