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차 일본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나라현 호류지(법륭사)를 방문하며 신은 운동화가 화제다. 흙과 자갈이 많은 경내 사정과 일본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구두 대신 운동화를 택했다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한 에티켓은 외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려’의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의전의 ‘준비 부족’과 그로 인한 결과물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방일을 위해 별도의 운동화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장에서 필요성이 제기되자 급히 수행원의 신발을 빌려 신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동선 하나, 소품 하나까지 치밀하게 계산되는 고도의 외교 행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고, 도보 이동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에 맞는 편안한 신발 하나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청와대 의전 시스템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그 ‘빌려 신은’ 신발의 정체다. 대통령의 발을 감싼 것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호간(HOGAN)’의 제품으로, 시중가 75만 원에 달하는 고가품이다. 물론 수행원 개인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명품을 신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착장으로 이어지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외교 무대에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 되어버린 셈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그 브랜드와 가격으로 도배되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보다 75만 원짜리 외제 운동화에 더 큰 관심을 쏟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애초에 꼼꼼한 준비가 있었다면, 혹은 급하게 빌려야 했다면 적어도 국산 브랜드는 없었을까?
우수한 기술력과 디자인을 갖춘 대한민국 토종 브랜드들도 많다. 30만 원 대, 혹은 그보다 저렴하더라도 품질 좋고 격식 있는 우리네 신발을 대통령이 신고 자갈밭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문화유산을 배려하는 대통령"이라는 찬사에 더해 "자국 브랜드를 사랑하는 세일즈 외교"라는 호평까지 얻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넥타이 색깔, 셔츠 소매의 걷어 올림까지 정치적 해석이 따르는 법이다. 하물며 타국 정상과 나란히 걷는 발끝은 오죽하겠는가. 수행원의 신발을 급히 빌려 신어야 했던 '준비성 결여', 그리고 결과적으로 75만 원짜리 외제 명품만 홍보해 준 꼴이 된 이번 해프닝은 섬세하지 못한 우리 외교 의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발걸음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그 역사적인 발걸음을 받쳐주는 것이 굳이 남의 나라 명품일 필요는 없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이 디테일의 실패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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