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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사학이 외면한 단군릉의 실체… 조선 기록과 환단고기의 교차 증언조선왕조실록 등 방대한 사서 기록과 '환단고기' 기록 일치  "단군릉은 조작 아닌 역사적 실체" 강조

북한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단군릉의 실제 주인공이 고조선의 47대 단군 중 5세 단군인 '구울(丘乙)'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단법인 대한사랑 윤창열 이사장은 최근 발표를 통해 "환단고기는 조작된 위서가 아니라 우리 상고사의 진실을 담고 있는 진서(眞書)"라고 강조하며, 그 증거로 북한 단군릉의 유래와 환단고기 기록의 일치성을 제시했다.

■ 강단 사학계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기록은 ‘단군릉’ 지목 
지난 1993년 북한은 평양 강동군 대박산에서 단군의 유골과 유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1994년 단군릉을 복원했다. 이에 대해 남한의 주류 강단 사학계는 학문적 근거보다 정치적 정통성 확보를 위한 조작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보여왔다.


그러나 윤 이사장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서가 이미 강동군에 단군릉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숙종실록(숙종 23년)에는 '강동의 단군묘와 평양의 동명왕묘를 수축하라'는 기록이 등장하며, 이후 영조, 정조, 고종, 순종 대에 이르기까지 강동의 단군묘에 대한 기록이 꾸준히 이어진다.

또한 조선 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권 강동현 조에는 ‘현의 서쪽 3리에 둘레 410척의 큰 무덤이 있는데 전해오는 말에 단군묘라고 한다’는 구절이 명시되어 있으며,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허목의 ▲미수기언, 안정복의 ▲동사강목 등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 소설가 빙허 현진건 역시 1932년 단군 성적 순례 중 이곳 대박산 단군릉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을 남긴 바 있다.

■ 환단고기, "5세 단군 구을, 여름철 서거로 현지 안장" 
명시 윤 이사장은 이처럼 여러 사서에 기록된 단군릉의 주인공이 왜 5세 단군 구을인지를 '환단고기'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2084년 7월 5세 단군 구을이 남쪽으로 순행하던 중 송양(현재의 강동군)에 이르러 병을 얻어 갑자기 붕어(崩御)했다. 당시 계절이 무더운 7월이었기에 수도인 하얼빈까지 운구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서거한 장소인 대박산에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47명의 단군 중 유일하게 도읍이 아닌 곳에 능이 조성된 이유를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왜 강동군 대박산에 단군의 묘가 전해 내려왔는지를 증명하는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를 긍정하게 하는 진서"
윤 이사장은 "북한의 단군릉은 임의로 만든 조작물이 아니라 조선 시대를 거쳐 수천 년간 전해 내려온 역사적 실체"라며, "환단고기는 기존 사학계가 부정하는 내용을 고고학적·문헌적 근거로 뒷받침해 주는 보물 같은 사서"라고 평가했다.

이어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 상고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찾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상 출처 : 단군은 신화라더니… 실존 단군릉이 기록에 있다? (환단고기는 진서이다 7편)  https://www.youtube.com/watch?v=ZgJXsc0TIWg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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