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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에서 늑대로, 이름 하나에 담긴 근대의 그림자 |
한때 한반도의 산과 들을 누비던 존재는 ‘늑대’가 아니라 ‘이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밤중에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두고 이리가 내려왔다고 말했고, 설화와 속담 속에서 이리는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을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그 이름은 거의 사라졌다. 같은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는 문학 속으로 밀려났고, ‘늑대’가 일상과 학술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어휘 교체가 아니라,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언어와 인식이 재편된 한 사례이다.
전통 사회에서 ‘이리’는 살아 있는 말이었다. 민담과 판소리, 야담 속에서 이리는 사람들과 긴장 관계를 맺으며 공존했다. 한자 기록에는 ‘狼’이 등장했지만, 그것은 문헌의 언어였을 뿐 생활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리’로 불렸다. 민중의 입말과 지식층의 기록어가 공존하던 이 구조는 오랫동안 유지됐다.
균열은 개항기 이후 서양 학문이 유입되면서 시작됐다. 서구의 동물 분류학은 생명을 체계적으로 나누고 이름을 고정하는 방식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을 경유한 근대 학술어가 대거 들어왔고, 한자 기록 ‘狼'은 일본어 ‘오오카미(狼)’에 대응하는 명칭으로 ‘늑대’가 만들어졌다. 학술적 표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순우리말인 ‘이리’는 모호하고 전통적인 이름으로 밀려났고, ‘늑대’는 과학과 교육의 언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일제강점기였다. 식민지 행정은 언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표준화를 추진했고, 교과서와 사전, 행정 문서에는 일본식 학술 체계와 호응하는 명칭이 채택됐다. 이 과정에서 ‘늑대’는 공식 명칭으로 고정됐고, ‘이리’는 방언이나 옛말, 비유적 표현으로 분류됐다. 이름의 선택은 곧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선택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이 흐름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교육과 학술 체계는 이미 ‘늑대’를 중심으로 굳어 있었고, 산업화와 도시화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언어 환경 자체를 해체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번역서, 영화 속에서 ‘wolf’는 일관되게 ‘늑대’로 번역되며 대중 인식을 고정시켰다. 이리는 점차 문학과 상징의 영역으로만 남게 됐다.
오늘날 ‘늑대’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과학적으로 규정된 존재로 인식된다. 반면 ‘이리’는 인간의 탐욕과 공포를 비유하는 말, 혹은 고전적 정서를 불러오는 표현으로만 쓰인다. 같은 동물을 가리키는 두 이름은 이제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말의 유행이 바뀐 사건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던 감각의 언어가 사라지고, 자연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근대적 시선의 언어가 자리를 대신한 과정이다. 이리가 사라진 자리에 늑대가 남았고, 그 사이에는 근대 국가와 학문, 식민지 경험이 남긴 깊은 흔적이 놓여 있다.
이름은 사물을 부르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다. 이리에서 늑대로의 전환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언어로 세계를 이해해 왔는지를 묻는 질문을 남긴다. 사라진 것은 단어 하나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오래된 거리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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