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말한다
"(파내류는) 창작 이래 지금까지 환단고기 전체의 해석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는 세상 만물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분류한 명나라의 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일본 관련 내용을 보충하여 일본에서 펴낸 책이다. 조선에도 알려져 여러 학자들의 책에 인용되었다. 이 책에 조선어 일부가 실려 있는데 여기 쓰인 한자는 모두 일본식으로 음독해야 한다. 즉 '波乃留(파내류)'는 일본식 발음으로 '하나루'이며 이는 그냥 조선어 보통 명사 '하늘(하ᄂᆞᆯ)'에 불과하다" (나무위키)
![]() |
역사 논쟁의 핵, 파내류(波奈留)
한국 고대사 학계와 재야 사학계 사이의 가장 치열한 전선 중 하나인 『환단고기(桓檀古記)』 위서 논쟁에서, '파내류(波奈留)'라는 어휘는 양측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비판론자들, 즉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파내류산(波奈留山)이나 파내류국(波奈留國)이라는 명칭이 1712년 일본에서 간행된 백과사전류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수록된 조선어 어휘 '천(天: 波乃留)'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20세기 초 계연수나 이유립 등이 『환단고기』를 창작하면서, 당대 일본이나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 알려진 『화한삼재도회』 혹은 이를 인용한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를 참고하여, '하늘'을 뜻하는 일본식 음차 표기를 그대로 역사 속 지명으로 둔갑시켰다고 공격한다.
『화한삼재도회』 조선어의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天 하늘 ( 파나류 波乃留)
地 땅 (수태여 須太輿)
日 일 (이류 伊留)
月 월 (어류 於留)
星 별 (배류 倍留 )
그러나 이러한 표절설이 고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와 차자 표기법(이두, 향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피상적인 분석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특히 위서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 즉 『환단고기』가 사용한 '나(奈)' 자와 『화한삼재도회』가 사용한 '내(乃)' 자의 서지학적·음운학적 차이에 주목한다. 이 미세한 차이는 단순한 필사의 실수가 아니라, 두 문헌이 각기 다른 언어적 층위와 시대를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언어의 화석'이다.
![]() |
| 화한삼재도회의 한 페이지 |
'내(乃)'와 '나(奈)'의 결정적 간극
위서론의 핵심은 "두 단어가 형태적으로 유사하므로 후자가 전자를 베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헌학적 정밀 분석을 수행하면, 두 텍스트 사이에는 베꼈다고 보기 힘든 결정적인 표기상의 차이가 존재함이 드러난다.
표절이 성립하기 어려운 논리적 모순
위서론자들의 주장대로 만약 『환단고기』 편찬자가 『화한삼재도회』를 보고 베꼈다면, 왜 굳이 '乃(내)'를 '奈(나)'로 바꾸었는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자 획수로 볼 때 '乃'(2획)는 '奈'(8획)보다 훨씬 쓰기 편하고 간단하다. 만약 단순히 베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원문의 간단한 글자를 버리고 더 복잡한 글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화한삼재도회』는 해당 단어의 발음을 가타카나로 '하노루(はのる)'라고 명기했다. 일본어 가나 표기법에서 '乃(노/내)'는 '노(の)' 발음을 표기하는 데 자주 쓰이는 만요가나(万葉仮名)이다. 반면, '奈(나)'는 일본어에서 명확하게 '나(な)' 발음으로 읽힌다. 즉, 『화한삼재도회』를 베끼려 했다면 일본어 발음 '하노루'에 맞춰 '乃'를 그대로 쓰거나 'No' 발음에 해당하는 다른 글자를 썼어야 한다. 굳이 'Na' 발음이 나는 '奈'를 썼다는 것은, 『환단고기』가 참고한 원전이 일본어 '하노루'가 아니라 한국어의 고대 발음인 '파날(Panal)' 혹은 '파나(Pana)'였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따라서 두 문헌의 표기 차이는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음운학적 배경을 가진 별개의 전승 과정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화한삼재도회』는 18세기 당시 일본인의 귀에 들린 조선어(하늘 -> 하노루)를 적은 것이고, 『환단고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고대 한국어의 음가를 이두식으로 적은 전승 기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두(吏讀)와 향찰(鄕札)로 본 '파나류'의 고대성
필자는 이두문이나 향찰 같은 것들이 좀 더 오래된 문헌이라는 것을 보증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고대 국어학적으로 매우 타당하며, 이 논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奈'라는 글자의 선택은 이 텍스트가 고대 삼국시대, 특히 신라와 백제의 표기법 전통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 차자표기법에서의 '奈'의 위상
고대 한국어에서 고유명사를 표기할 때 '奈(나)'는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음차(音借) 문자 중 하나이다.
신라 향가나 이두문에서 '奈'는 주로 문법적 기능을 하는 어미나 고유명사의 끝 음절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나(那)'와 함께 '나(奈)'는 모음 /a/를 포함한 음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글자였다.
고려시대 이후, 특히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언문(한글)의 창제로 인해 복잡한 한자 차자 표기는 쇠퇴하거나, 관습적으로 굳어진 형태(예: 乃)로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해동역사』가 '乃'를 사용한 것은 19세기 조선의 표기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환단고기』가 고집스럽게 '奈'를 사용한 것은 이 텍스트의 원천이 고려 이전, 즉 이두와 향찰이 활발히 쓰이던 시기의 기록(고기, 삼성밀기)에 닿아 있음을 방증한다.
![]() |
결정적 증거: 일본 지명 '나라(奈良)'와의 연결고리
'파나류'의 '나(奈)'가 고대 한국어 표기라는 가장 강력한 외적 증거는 바로 일본의 고대 지명 '나라(奈良)'이다. 다수의 언어학자와 역사학자(마쓰오카 시즈오 등)는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의 지명이 한국어 '나라(國)'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고대 한반도 도래인들이 정착하여 '우리 나라'라고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굳어졌다는 설이다.
흥미롭게도 이 '나라'를 표기할 때 일본 서기 등 고대 문헌은 '奈(나) 良(라)'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즉, 고대 백제/신라 사람들이 건너가 사용하던 '나라'라는 발음을 적기 위해 선택한 글자가 바로 '奈'였다.
![]() |
만약 『환단고기』의 저자가 현대에 임의로 글자를 지어냈다면, 굳이 일본 지명에 쓰인 '奈'를 가져와 '파내류'에 끼워 넣을 확률은 극히 낮다. 오히려 『환단고기』 속의 '파나류'와 일본의 '나라'가 모두 고대 한국어의 차자 표기법이라는 공통된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는 '파나류'라는 표기가 18세기가 아니라, 7~8세기 혹은 그 이전의 표기 관습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날(Panal)'에서 '하늘(Haneul)'로의 변천
『환단고기』가 진서(眞書)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논리적 축은 음운 변화의 역사성이다. '파내류'를 '파나류' 혹은 '파날'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국어음운론의 '순경음 비읍(ㅸ)' 및 'ㅎ' 구개음화 이론과 완벽하게 부합한다.
![]() |
P > F > H 자음 변천 법칙 (순경음화 및 약화)
고대 알타이어 및 한국어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어두 자음 P(ㅂ)는 시간이 흐르면서 F(ㅸ/순경음 비읍)을 거쳐 H(ㅎ)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언어학에서는 약화(Lenition) 현상이라고 한다.
고대형 (Proto-Korean): *Panal (파날)
'파(波)'는 고대에 'Pa'로 발음되었다.
'나(奈)'는 'Na'이다.
'류(留)'는 종성 'ㄹ(l)'을 표기하는 이두식 용법이다(예: 伊留=일, 於留=얼).
따라서 波奈留 = P-N-L = Panal (파날).
중세형 (Middle Korean): *Hanal (하날)
어두의 P음이 약화되어 H음으로 변했다 (P > H).
이 시기에는 아래아(ㆍ)가 살아있어 '하ᄂᆞᆯ'로 표기되었다.
근대/현대형 (Modern Korean): Haneul (하늘)
아래아(ㆍ)가 소실되면서 'ㅡ(eu)'로 음가가 변했다.
이 단계에서 일본인들이 들은 소리는 'Ha-neu-l'이었고, 이를 'Ha-no-ru(波乃留)'로 적은 것이다.
위서론의 패착: 역방향 재구의 불가능성
위서론자들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20세기 초의 위조자가 『화한삼재도회』의 '하노루(Ha-no-ru)'를 보고, "아, 이것은 원래 고대에는 P 발음이었을 것이고, 모음은 으(eu)가 아니라 아(a)였을 것이다"라고 추론하여, 고도의 언어학적 지식을 동원해 '파나류(Pa-na-ryu)'로 역(逆) 재구해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1910~1970년대 재야 사학자들이 현대 언어학적 지식, 특히 고대 한국어의 음운 변천 법칙(P>H)과 이두 표기법의 미세한 차이(奈 vs 乃)까지 완벽하게 계산하여 위서를 창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해져 내려오는 원문이 '파날(波奈留)'이라는 고어(古語)를 담고 있었고, 『화한삼재도회』는 훗날 변형된 '하늘'을 채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즉, 복잡하고 오래된 형태(파날)가 원형이고, 단순하고 변형된 형태(하노루)가 파생형인 것이다.
파나류산(波奈留山)의 의미: '하늘 산'과 천손 문화
파날'은 곧 '하날(하늘)'이자 '광명(光明)'
'파(波)'를 P음가로 읽어 복원한 '파날'은 단순히 'Sky'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고대 태양 숭배 사상과 연결된다.
파(Pa/Ba) : 밝음(明), 태양, 신성을 뜻하는 고대어 어근. (예: 박혁거세의 '박', 밝은 산인 '백두산', 신의 이름 '발/배달')
날(Nal) : 땅(Land), 혹은 태양이 솟는 날(Day).
파나류국(波奈留國): 따라서 파나류국은 '광명의 나라', '하늘의 나라', '밝은 땅'이라는 뜻이 된다. 이는 환국(桓國)의 '환(桓)'이 '환하다(Bright)'는 뜻을 가진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명으로서의 구체성
『화한삼재도회』에서 '파내류'는 단지 어휘 목록의 하나(천=파내류)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다"라고 구체적인 지리적 실체로 묘사한다. 누군가 어휘 사전에서 단어를 베껴와서 뜬금없이 산 이름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파나류(하늘) 산'이라는 작명은 고대 산악 숭배 신앙(천산, 백두산, 태백산 등)의 맥락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는 '파나류'가 급조된 명칭이 아니라, '하늘 산(天山)'을 뜻하는 고유어 '파날 뫼'를 이두로 정착시킨 고유 지명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창작이 아닌 전승의 증거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위서론자들의 '파내류산 표절설'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완벽하게 반박될 수 있다.
표기의 차별성: 『환단고기』는 18세기 일본식 표기인 '내(乃)' 대신, 고대 이두식 표기인 '나(奈)'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7세기 이전의 고대 한국어 표기 전통(예: 일본의 '나라' 지명 표기)과 일치한다.
음운의 고대성: '파나류(波奈留)'는 '파날(Panal)'로 재구되며, 이는 '하늘'의 현대음보다 앞선 P>H 자음 변천 이전의 고형(古形)을 간직하고 있다. 위작자가 이러한 음운학적 역사를 계산하여 표기를 조작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불필요한 복잡성: 사용자의 지적처럼, 문헌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굳이 잘 알려진 쉬운 글자(乃)를 두고 생소한 이두식 글자(奈)를 써서 의심을 살 필요가 없다. 이 '불필요한 복잡성'이야말로 텍스트가 인위적으로 창작된 것이 아니라, 난해한 고대 원전을 필사하거나 전승하는 과정에서 보존된 흔적임을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파내류산(파나류산)은 일본 서적의 어설픈 모방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하늘'을 '파날'이라고 부르던 상고시대의 언어 습관을 화석처럼 간직한 진서(眞書)의 결정적 증거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두와 향찰로 기록된 이 투박한 이름 속에야말로 환국과 배달로 이어지는 한민족 시원 역사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다.
![]() |
| 현재의 '천산' 아래에서 필자 (2025년 10월) |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