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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11)

" 소통 않고 살 수 있을까? "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 만나면 소통한다...탁구공도 탁구선수도

탁구를 보자. 선수들은 마주 나와 서서 탁구채와 탁구대 그리고 하늘 길, 나아가, 눈길과 손길, 발길 등 몸길을 수단으로 하여 공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각각 상대의 동작과 반응을 예의(銳意) 주시(注視)하며 시선(視線)을 주고받으면서 탁구공을 주고받는다.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 동작과 표정을 보이고 보면서 교환한다. 탁구공은 탁구공대로 손이나 탁구채 혹은 탁구대를 떠나는 순간, 공중을 만나고 탁구채를 만나고 탁구대를 만나고 다시 상대의 탁구채를 만난다. 공은 상대의 탁구채를 만나자마자 다시 떠난다. 또, 경기장에 오기 직전의 선수들은 숙소와 만나고 음식과 만나고 욕실과 만나고 잠시 헤어졌던 외투와 다시 만난다. 그들은 또한 코치의 말과 만나고 대중매체와도 만난다.

탁구장에 온 선수들은 숙소에서 만난 것들을 자신 속에 하나의 방식으로 계속 만나고 있다. 밥은 선수의 배 속에, 옷은 몸 위에, 코치의 말은 머릿속에 자리하고, 침대의 안락함과 배변의 시원함, 샤워의 즐거움 등도 적어도 느낌과 기억 속에서 선수들을 당분간은 따라다닌다.

선수들이 탁구를 선택하고 숙소를 선택하고 옷을 선택하고 대중교통을 선택하는 데까지는 다시 수많은 인적 물적 만남과 떠남들이 있었다. 한 선수가 탁구에 관심을 갖기까지는 영화나 TV, 잡지 등 대중매체, 탁구 치는 친구, 싫은 수학 공부, 탁구대 있는 교회나 동사무소의 방문, 자신의 신체 조건에 대한 자신과 남들의 판단 등이 역할을 했을 수 있고, 반대로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아버지 혹은 자신과 갈등하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또, 교회의 탁구대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획한 머릿속 그림이 노동 속에서 목재 등의 재료와 만나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교인들을 위해 장로들이 협의하여 가게에서 구입해 놓은 것이다. 또, 이때 나간 돈은 우여곡절 속에 다른 사람들의 지갑을 떠나 교인들의 주머니로 들어왔다가 다시 장로들의 수중으로 들어온 돈이다.

이들 모두는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직접이든 간접이든, 남과든 자신과든 각각 일정한 방식의 만남과 소통으로 이어진다. 매체가 만들어낸 메시지에 그리고 아버지의 가치관이나 판단능력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인적 물적 만남과 소통들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아버지와든 자신과든, TV와든 탁구대와든, 탁구선택에만도 이미 수많은 인적 물적 만남과 소통들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막힘없는 흐름

차도의 도(道), 혈관의 관(管), 물길의 길, 언로의 로(路), 숨통의 통(筒)은 모두 막힘없이 ‘갈 수 있는’(辶) ‘길’(甬)인 통(通)과 통한다.

막히면 못 산다. 물길이든 바람길이든, 밥 길이든 말길이든 가거나 오는 길들이 활짝 열려야 한다. 그렇다. 열려야 한다. 영어 ‘communication’이 메시지 교환의 의사소통을 의미함에 비해, 우리말 ‘소통’은 물질 자체의 흐름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소통의 의미는 의사소통의 뜻을 훨씬 넘어서기에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은 물론, 교통의 흐름, 자연물의 흐름 내지는 ‘새로운 자와 묵은 자가 교대로 자리를 사양함’을 의미하는 신진대사(新陳代謝)까지 포괄한다.

자연을 만나든 사람을 만나든, 일하든 놀든 사람들은 소통 없이 살 수 없다. 만남이나 교환 없이, 오고감이나 움직임 없이 삶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함께 노동하고 놀면서 사랑하고 문화를 창조해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노동, 놀이, 생각, 사랑, 문화 창조 등 모든 삶의 활동은 하나의 방식으로 만남을 전제하고 결과한다. 생존 수단을 확보하며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을 혹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만나는 삶 속에 소통과 놀이가 생겨나고 말과 생각이 생겨난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일정한 조건들 속에 이러한 만남과 소통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 하나의 형태를 갖추면서 관습과 제도, 전통이 생겨나고 삶의 일정한 방식인 문화가 형성된다.

만나면 주고받는다. 그리고 만나면서 뭔가를 주고받음은 소통이다. 만남에서 마주 나온 나는 마주하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메시지와 물질을 또 하나의 물질을 매개로 ‘떼어 보내고’ 상대로부터도 이들을 ‘맞이하여 받는다’. 주고받는 것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 생물학적인 것일 수도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정신은 그러나 늘 물질 속의 정신이다. 그 물질이 육체든, 종이든, 소리든, 색이든...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떠난 곳도 만난 곳도 변화를 겪는다.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생겨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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