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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의 164년 미스터리, 오직 《환단고기》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 요(堯)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舜) 임금 때를 지나 하(夏)나라 때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 나라를 다스린 지가 1,028년으로, 어찌 변화시켜 환인께 전할 것이 없었겠는가? 그 뒤 164년 만에 어진 사람이 다시 군신(君臣)관계를 다시 열었도다 <제왕운기>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우리 고대사 학계에 난해한 숙제를 하나 던졌다.  1028년, 《본기(本紀)》에는 1038년으로 기록한 뒤  바로 이어지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사이에 존재한다는 '164년의 공백기'다.

이승휴는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지 1,028년 만에 물러나고, 그로부터 164년 뒤에야 어진 사람(기자)이 다시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기존 강단 사학계는 이 164년을 두고 이승휴의 착각이라거나, 신화적 수치의 나열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문헌적 근거가 없으니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미스터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오직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대입할 때만 비로소 그 정교한 실체를 드러낸다. 《환단고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164년이라는 숫자가 가리키는 진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1,028년의 오차를 바로잡는 《환단고기》의 1,048년
《제왕운기》는 단군의 통치 기간을 1,028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왜 하필 1,028년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 숫자의 비밀을 푼 것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다.

<단군세기>는 고조선이 세 번의 왕조(삼한관경)로 나뉘어 통치되었음을 명확히 하며, 제1왕조(송화강 아사달 시대)의 역년이 정확히 '1,04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제1왕조: 1대 단군왕검 ~ 21대 소태 단군

기간: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286년 (총 1,048년)

이승휴가 기록한 1,028년은 실제 역년인 1,048년에서 약 20년의 오차가 발생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승휴는 본기에서는 1038년이라고 수정하였으며 제왕운기를 본 《응제시주》는 단군의 수명을 1048세으로 맞추어놓았다.  

단군수명 1048년이라는 책

- 《동사강목》은 단군의 수명을 1048세
- 조선《세종실록》  : 전 판한성부사 유사눌이 《세년가》에 단군이 나라를 누린 것은 1048년
- 《제왕운기》 1028년기록, 《본기(本紀)》에는 1038년.
- 《응제시주》 단군의 수명을 1048세 
- 《역대세년가》 단군의 수명을 1048세 
- 《동국통감》 1048년이 단군의 수명이 아니라 그 후손들이 역대로 다스린 햇수.
- 《기년아람》은 단군의 수명은 1048세 혹은 1908세.
- 《여암전서》는 '무진년에서 을미년에 이르기까지 1048년인데, 이는 재위년수'.

중요한 것은 이승휴 역시 '약 1,000여 년이 지난 시점(기원전 13세기 후반)'에 단군조선의 거대한 변곡점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환단고기》는 이 변곡점이 바로 '소태 단군의 퇴위와 색불루 단군의 등극'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임을 증언한다.

164년은 '진실의 역사'와 '거짓된 역사' 사이의 간격
그렇다면 왜 164년이라는 붕 뜬 시간이 생겨났을까?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공식 또한 《환단고기》에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제1왕조가 끝난 해는 기원전 1286년이다. 정상적인 역사라면 이때부터 색불루 단군의 제2왕조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대주의 사관에 물든 후대의 기록자들은 중국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보냈다는 기원전 1122년을 억지로 역사에 끼워 넣으려 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계산이 나온다.

《환단고기》가 밝힌 제1왕조 종료 시점: 기원전 1286년

사대주의자들이 설정한 기자 동래 시점: 기원전 1122년

두 시점 사이의 차이: 1286 - 1122 = 164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즉, 164년이라는 숫자는 무작위로 나온 것이 아니다.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제1왕조의 멸망, BC 1286)"과 "조작된 역사적 사건(기자조선의 시작, BC 1122)" 사이에서 발생한 물리적 시간 차이가 바로 164년인 것이다.

이승휴는 구전되거나 비전된 사서를 통해 '단군조선의 한 시대가 끝난 시점(BC 1286년경)'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학자로서 '기자조선(BC 1122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진짜 역사가 끝난 시점부터 가짜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164년을 설명할 길이 없어 '공백'으로 남겨두는 고육지책을 쓴 것이다.

《환단고기》 없이는 풀 수 없는 고조선사
결국 164년의 공백기는 '기자조선'이라는 허상을 정사에 안착시키기 위해, 멀쩡히 존재했던 색불루 단군의 제2왕조 초기 역사를 희생시킨 흔적이다.

이승휴는 고민 끝에 이 기간을 빈칸으로 남겼지만, 그 빈칸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할 열쇠는 주지 못했다. 그 열쇠는 오직 상세한 연대기와 제왕의 계보를 모두 담고 있는 《환단고기》만이 쥐고 있다.

《환단고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164년을 이승휴의 착오나 신화적 상징으로만 치부했을 것이다.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는 1,048년 만에 제1왕조가 막을 내렸음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시점부터 164년을 더해야 억지로 끼워 맞춘 기자조선의 연대가 나온다는 구조적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사의 복원, 환단고기가 필수다
따라서 제왕운기의 164년 공백기는 역설적으로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환단고기》의 정교한 연대기가 없이는 기존 사서의 모순을 설명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164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그저 거짓된 '기자조선'의 간판을 내리고, 그 자리에 《환단고기》가 전하는 '색불루 단군의 제2왕조 개창'이라는 진실의 역사를 바로 세우면 된다.

164년의 미스터리는 풀렸다. 그리고 그 해결사는 명백히 《환단고기》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위서(僞書)라 매도하지 않고,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뼈대를 찾는 정사(正史)의 나침반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제왕운기》는 1028년기록, 《본기(本紀)》에는 1038년. 본문에 163년 공백기를 써 놓고 주(註)에는 "다른 곳에서는 이후 164년 동안 비록 부자관계는 있었으나 군신관계는 없었다고 되어 있다"라고 써 있다. .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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