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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6일, 혁명과 비극, 그리고 민주주의의 갈림길, <AI그림> |
역사는 특정한 날에 집중적으로 사건을 쌓아 올리며 인류의 방향을 틀어놓곤 한다. 1월 26일 역시 그러한 날 가운데 하나다. 이 날은 제국의 몰락과 혁명의 시작, 민주주의의 실험과 실패, 그리고 인간의 잔혹함이 극명하게 교차한 날짜로 기록돼 있다.
1788년 1월 26일,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첫 공식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 날은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데이’로 기념되지만, 동시에 원주민들에게는 침탈과 상실의 시작을 의미하는 날이기도 하다. 죄수 식민지로 출발한 이 정착은 대영제국의 팽창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오세아니아 역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한쪽에선 국가의 탄생으로, 다른 쪽에선 문명의 붕괴로 기억되는 이중적 역사다.
20세기에 들어서도 1월 26일은 격동의 순간을 품었다. 1915년 1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전신이 본격적인 정치 조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넬슨 만델라를 중심으로 한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토대가 되었고, 인종차별 체제에 맞선 장기 투쟁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 날은 민주주의가 단번에 주어지지 않으며, 오랜 조직과 인내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세기, 인류는 정반대의 장면도 목격했다. 1945년 1월 26일,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군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에 접근하면서, 나치 독일의 집단학살 실상이 세계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후 1월 27일의 공식 해방으로 이어졌지만, 26일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예감하게 한 날로 남아 있다. 문명과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성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교훈이 이 무렵 확산됐다.
한국사에서도 1월 26일은 권력과 저항의 긴장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이 시기 전후에는 독립운동가와 정치인, 언론인에 대한 탄압과 숙청이 반복되었고, 냉전 체제 속에서 민주주의의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됐다. 특정 사건 하나로만 환원되지는 않지만, 1월 말이라는 시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늘 격동의 분기점으로 작동해 왔다.
이처럼 1월 26일은 새로운 국가의 탄생과 동시에 원주민의 상처를 남겼고, 민주주의 운동의 씨앗을 틔우는 한편, 인류 최악의 범죄가 드러나는 전조를 품었다. 같은 날짜에 기록된 이 상반된 장면들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진보하지 않으며, 선택과 책임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김가연 기자 k-ga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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