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 웅상
고대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함에 있어, 텍스트의 파편화와 해석의 난해함은 연구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제기해왔다. 특히 중국 중심의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하여 기술된 정사(正史) 및 지리지들은 주변부 민족, 특히 동이(東夷)로 통칭되는 한민족 및 북방 민족의 고유한 문화 원형을 타자화하거나 신비화하여 기록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기록들 속에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웅상(雄常)'이라는 존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산해경(山海經)』과 『진서(晉書)』 등 중국의 고문헌에 등장하는 웅상은 숙신(肅愼)의 땅에 존재하는 신령한 나무이자, 중국의 성제(聖帝)들이 대를 이어 즉위할 때 그 껍질로 옷을 해 입었다는 미스터리한 서술의 대상이다.
그러나 중국 측 기록은 웅상의 외형적 특징이나 그로부터 얻어지는 산물(나무 껍질 옷)에 주목할 뿐, 왜 하필 '웅상'이라 불리는지, 그리고 왜 문명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제왕들이 변방의 '오랑캐' 땅에 있는 나무껍질을 탐하였는지에 대한 내적 논리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환단고기(桓檀古記)』, 특히 그 안에 수록된 「태백일사(太白逸史)」는 웅상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그리고 놀랍도록 구체적인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
중국 고문헌 속의 웅상(雄常)
중국 문헌에서 웅상은 주로 신화적 지리지나 이민족에 대한 열전(列傳) 속에 등장한다. 이는 웅상이 중원(中原)의 내부 문화가 아닌, 외부 세계의 경이(Wonder)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산해경(山海經)』의 웅상
선진(先秦)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은 고대 동아시아의 지리적 상상력과 신화적 세계관이 응축된 텍스트이다. 특히 「대황북경(大荒北經)」과 「해내경(海內經)」은 동북방의 지리와 민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을 담고 있다.
"대황의 한가운데(大荒之中) 산이 있어 불함(不咸)이라 하며 숙신씨(肅愼氏)의 나라가 있다. 숙신국은 백민국(白民國)의 북쪽에 있으며, 나무가 있어 이름하여 웅상(雄常)이라 하고, 앞선 8대의 제왕(先八代帝)들이 여기에서 취하였다(於此取)."

이 짧은 기록은 웅상 연구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수수께끼를 제공한다.
첫째, 지리적 비정의 문제이다. '불함산(不咸山)'은 오늘날의 백두산(장백산)으로 비정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나 태백일사로 보면 불함산은 '완달산'으로 현재의 백두산보다는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불함'이라는 명칭 자체가 퉁구스어계의 '부르한(Burkhan)' 혹은 고대 한국어의 '밝은(Park/Balk)' 산, 즉 신성한 산을 의미하는 음차(音借)로 해석된다. 이는 웅상이 위치한 공간이 한민족 및 북방 민족의 영적 고향인 불함산 권역임을 명시한다.
둘째, 명칭의 모호성이다. '웅상(雄常)'이라는 이름은 자구 그대로 해석하면 '수컷의 영원함' 혹은 '강력한 항상성' 등으로 풀이될 수 있으나, 문맥상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중국 측 주석가들은 이를 특이한 나무의 이름으로만 치부할 뿐, 왜 '웅(雄)'이라는 글자가 쓰였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셋째, '선팔대제(先八代帝)'의 정체이다. 중국 신화의 맥락에서 8대의 제왕은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중원의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왜 굳이 북방의 황무지(대황)에 있는 숙신의 나무에서 무언가를 '취해야' 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중원 문화의 자생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화이관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진서(晉書)』 「동이전」의 기록과 '낙상(雒常)'의 변이
당나라 태종 때 편찬된 『진서』는 보다 역사적이고 민속지적인 관점에서 숙신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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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신씨에 나무가 있어 낙상(雒常)이라 부르며, 만약 중국(中國)에서 성제(聖帝)가 대(代)를 이어 즉위함이 있으면, 그 나무의 날가죽으로 가히 옷을 해 입을 만 하였다(其木生皮可衣)."
『산해경』의 '웅상(雄常)'이 『진서』에서는 '낙상(雒常)'으로 표기되었다. '낙(雒)'은 검은 갈기가 있는 말, 혹은 물수리 등을 의미하며, 고대 음운학적으로 '웅(雄)'과 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거나, 혹은 필사 과정에서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중국 문헌 내에서는 이 두 글자의 차이를 명확히 해명하지 못하고 단순히 이칭(異稱)으로만 처리한다.
『진서』는 웅상(낙상)이 항상 껍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성스러운 제왕이 즉위할 때"에만 반응한다고 서술한다. 중국은 예로부터 잠상(蠶桑)과 마(麻)를 통한 직조 문화를 문명의 척도로 삼았다. 그런데 최고의 문명을 상징하는 성제(聖帝 성스러운 제왕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의복인 '나무껍질 옷'을 입는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이는 웅상의 나무껍질이 고도의 상징성을 띤 '예복(禮服)' 혹은 '성물(聖物)'임을 암시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송대(宋代)에 편찬된 『태평어람』은 『산해경』과 『진서』, 그리고 『숙신국기(肅愼國記)』 등을 인용하며 웅상과 낙상을 혼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산해경』에서는 웅상이라 하고, 『진서』에서는 낙상이라 한다."
이러한 병기(倂記)는 중국 지식인들조차 이 대상의 정확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그들에게 웅상은 북방의 기이한 풍속, 혹은 전설 속의 보물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 그것이 가진 종교적, 역사적 무게감은 소거되어 있었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웅상의 진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중 ‘삼한관경본기’와 ‘삼신오제본기’는 웅상의 정체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때에 큰 나무를 봉하여 환웅의 신상(桓雄神像)으로 삼아 이에 절하였다. 신령한 나무(神樹)를 속칭 웅상(雄常)이라 하니, 상(常)은 항상 계신다(常在)는 뜻이다."

이 기록은 웅상 연구의 '로제타 스톤'과도 같다.
첫째, 어원의 완벽한 해명이다. 중국 문헌에서 단순히 '수컷(雄)'으로 오해되거나 음차로 여겨졌던 '웅'은 바로 배달국(倍達國)의 시조이자 한민족의 성조(聖祖)인 환웅(桓雄)의 마지막 글자였다. 즉, 웅상은 '환웅상'의 약칭인 것이다. 이는 마치 '불상(佛像)'이 '부처의 형상'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조어법이다.
둘째, '상(常)'의 중의적 해석이다. 『환단고기』는 '상'을 '항상 계신다(常在)'는 철학적 의미로 해석함과 동시에, 그것이 '형상(像)'을 의미하는 대용자로 쓰였음을 시사한다. 고대에는 구체적인 조각상(Icon)을 만들기 이전에 자연물, 특히 거대한 나무를 신의 현현으로 섬겼다. 따라서 '웅상'은 '영원히 살아계신 환웅님', 혹은 '환웅님이 깃든 나무'라는 뜻이 된다. 이는 중국 기록의 모호함을 일거에 해소한다.
소도(蘇塗) 제천 의례의 핵심으로서의 웅상
『환단고기』는 웅상을 고립된 자연물이 아니라, 소도(蘇塗)라는 국가적 종교 제도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소도가 서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을 보게 되었다." "해마다 10월이면 대시전(大始殿)을 세우고... 돌아가신 천제 환웅의 상을 받들어 모셨다."
이 비교에서 드러나듯, 『환단고기』는 웅상을 소도 신앙의 중추인 '신단수(神檀樹)'의 구체적인 명칭으로 제시한다. 소도는 죄인이 들어와도 잡지 못하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으며, 그 중심에 선 웅상은 하늘(환웅)과 땅(인간)을 잇는 우주목(Axis Mundi)이자, 환웅의 통치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상기시키는 헌법적 상징물이었다.
나무껍질 옷(웅상포)의 제의적 의미
『진서』가 전하는 '나무껍질 옷'에 대한 미스터리 역시 『환단고기』의 맥락에서 비로소 풀린다.
고대 사회에서 시조신(First Ancestor)의 모습을 모방하는 것은 곧 그의 권위와 신성을 계승하는 가장 강력한 의례였다. 환웅은 '신단수' 아래로 내려온 천신(天神)이다. 따라서 환웅의 신상인 웅상의 껍질(Skin)을 입는다는 행위는, 즉위하는 왕이 곧 환웅의 현신이 됨을 선포하는 대관식(Coronation)의 절차였던 것이다.

이는 서양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사자 가죽을 쓰고 힘을 얻거나, 기독교 전통에서 성인의 유물(Relic)을 접촉하는 것과 유사한 '접촉 주술' 및 '신성 전이'의 논리다. 중국의 성제들이 이 옷을 탐했다는 『진서』의 기록은, 역설적으로 고대 동북아에서 환웅의 권위가 중원 지역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중원의 지배자들조차 그 '북방의 천신'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환단고기』는 바로 이 '정통성의 원천'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웅상이라는 코드를 통해 웅변하고 있다.

웅상, 한민족의 영적 기둥을 찾아서
웅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환단고기』와 중국 고문헌을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명백하다. 중국 문헌 속의 웅상이 '이름 모를 신기한 나무'였다면, 『환단고기』 속의 웅상은 '역사와 신앙의 주체로서의 환웅'이었다.
『환단고기』는 웅상이 환웅의 신상(神像)임을 밝힘으로써, 중국 기록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왜곡을 교정하였다. 또한 웅상이 위치한 소도가 고대 동북아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음을 드러냄으로써, 한민족 상고사가 변방의 역사가 아닌 문명의 발신지였음을 증명하였다. 성제들이 입었던 웅상포는 중화 문명조차 동경하고 권위를 빌려오고자 했던 배달-고조선 문명의 영광된 유산이었다.
따라서 웅상에 대한 『환단고기』의 기록은 단순한 신화적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동북아시아인들의 우주관, 통치 철학, 그리고 제의적 실천이 응축된 타임캡슐이다. 이 캡슐을 여는 순간, 우리는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고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웅상에 대한 비교 연구는 『환단고기』가 위서론의 굴레를 벗고 사료적 가치를 지닌 고전으로 재평가받아야 함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웅상은 지금도 문헌 속에, 그리고 우리의 민속 속에 살아 숨 쉬며, 잃어버린 환웅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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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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