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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결의 달 2월, 시간은 이렇게 인류를 흔들어왔다 |
“벌써 2월.”
시인 오세영의 말처럼 2월은 늘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도착한다. 새해의 각오가 아직 몸에 배기도 전에, 계절은 이미 다음 장을 넘긴다. 라틴어 Februarius, ‘정결하게 씻는 달’에서 유래한 2월은 인류사에서도 유난히 정화·전환·결단의 순간들을 품어왔다.
서기 561년, 신라 진흥왕은 오늘날 경남 창녕에 척경비를 세웠다. 이는 단순한 비석이 아니라, 왕권과 영토 질서를 돌에 새긴 국가 선언이었다. 국경을 분명히 하고 땅을 정돈하려는 의지는 이후 한반도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을 형성했다.
1019년 고려 현종 10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귀주에서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파했다. 60세의 문신이었던 강감찬은 전쟁의 최전선에서 승리를 이끌었고, 10만에 달하던 거란군은 수천 명만 살아 돌아갔다. 이 승리는 무력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외교와 문치의 나라 고려가,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무장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역사적 장면이었다.
근대로 접어들며 2월은 더 자주 격동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1906년, 대한제국의 주권을 사실상 무력화한 일제 통감부 설치는 나라의 운명이 급격히 기울어가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년 뒤인 1919년,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길림에서 무오독립선언을 발표했다. 조소앙이 작성하고 신채호 등이 참여한 이 선언은, 2·8 독립선언과 3·1운동으로 이어지는 독립의 사상적 불씨가 되었다.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는 김동인과 주요한 등 청년 문인들이 문예지 『창조』를 창간했다. 총과 선언만이 아니라, 언어와 문학 역시 식민지 현실에 맞서는 또 하나의 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2월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기록한다. 1935년 오늘,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체계적으로 도입한 지석영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천연두라는 공포 앞에서 의학과 계몽을 선택했고, 우두법 보급과 국문 연구를 함께 추진하며 근대 보건과 언어의 토대를 다졌다. 그의 발자취는 다산 정약용이 19세기 초 이미 시도했던 예방의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전쟁과 냉전의 시대에도 2월은 분기점이었다. 1951년 유엔은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1968년에는 오늘날 산업화의 상징으로 남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됐다. 1987년에는 한방의료보험이 전국으로 확대되며 의료 복지의 지형이 바뀌었다.
세계사에서도 이 날은 굵직하다. 1598년 이탈리아에서는 인류 최초의 오페라로 평가받는 『다프네』가 무대에 올랐고, 1881년에는 파나마 운하가 기공되며 지리와 문명의 흐름이 다시 짜이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의 거장 피트 몬드리안은 1944년 오늘 세상을 떠났고, 1979년 이란의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15년 망명 끝에 귀국해 중동 질서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으로 올수록 2월의 기록은 더 날것이 된다. 2021년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민주주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같은 달, 세계 곳곳에서는 폭설과 지진, 대형 참사들이 이어지며 인간 문명의 취약성이 다시 확인됐다.
이처럼 2월 1일은 조용한 달의 시작이지만, 역사 속에서는 늘 질서를 세우거나 무너뜨리고, 생명을 지키거나 앗아가며, 사유와 혁명을 동시에 낳아온 날이었다. 시인이 말했듯, 무심코 지나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피어나고 있다. 오늘, 문득 뜰의 매화가지를 살피듯, 이 날이 품어온 시간의 결을 다시 들여다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가연 기자 k-ga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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