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 힐링 인물, 지명
서거 31주기 맞은 이한기 박사, ‘칙령 제41호’로 독도 주권의 법적 토대를 세운 학자
이한기 박사, ‘칙령 제41호’로 독도 주권의 법적 토대를 세운 학자

오늘은 국제법학자이자 전 감사원장을 지낸 이한기 박사의 서거 31주기다. 이한기 박사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국제법적 근거임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널리 알린 대표적 독도법 학자로 평가받는다.

이한기 박사는 1995년 2월 2일 별세했다. 그는 문헌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라기보다, 이미 흩어져 있던 사료와 연구 성과를 국제법의 언어로 재구성해 칙령 제41호의 법적 효력을 체계적으로 논증한 학자였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사료 소개를 넘어, 독도가 역사적·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국제사회에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 후반까지 독도를 둘러싼 학계의 논의는 활발했지만, ‘석도(石島)’가 곧 독도의 옛 이름이라는 점을 공식 법제 문헌으로 입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방종현, 이숭녕, 홍이섭, 박관숙, 황상기, 유홍렬, 박대련 등 여러 학자들이 석도를 독도의 다른 명칭으로 소개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 문헌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한기 박사는 이러한 학계의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968년경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시절, 대한제국 의정부 총무국이 간행한 『법규류편(法規類編) 속이(續貳)』에서 칙령 제41호의 원문을 확인하고 이를 학계와 사회에 알렸다. 이 칙령은 대한제국이 1900년 10월 25일 반포한 법령으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면서 그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로 명시하고 있다.

『법규류편』에 수록된 칙령 제41호는 해당 내용이 공식 법제사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였다. 특히 이 문건은 대한제국의 중앙정부가 독도를 포함한 울도군의 관할 범위를 명문화했음을 보여주며, 이후 독도 영유권 논의의 핵심 자료로 자리 잡게 된다.

이한기 박사의 연구가 발표된 이후, 학계와 정부는 칙령 제41호를 대한제국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확히 인식하고 통치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국제법적 증거로 본격 인식하기 시작했다. 칙령 제41호는 당시 대한제국 관보를 통해 공표되어 국내외에 배포됐으며, 울도군청의 행정 관할에 석도가 포함돼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1960~70년대 독도 연구는 정치적·외교적 쟁점과 맞물리며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일부에서는 ‘석도=독도’라는 해석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지만, 다수 국내 연구는 석도가 울릉도 주민들이 사용하던 ‘돌섬’ 또는 ‘독섬’ 개념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지리적·언어적·행정적 측면에서 독도와 동일한 섬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한기 박사의 문제 제기는 1990년대 초 이태진 교수 등 후속 연구자들의 연구로 이어지며 더욱 확장됐다. 이들 연구는 고종 황제 시기의 영토 정책이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근대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 주권을 선언한 법적 행위였음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대한제국과 고종 황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도 함께 이뤄졌다.

이한기 박사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한국의 영토》(1969) 등 저서로 정리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의 ‘무주지 선점론’이 성립할 수 없으며, 그 이전에 이미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였음을 국제법적으로 논증했다. 이 작업은 이후 독도 관련 정부 자료와 학술 연구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이해하고 국제사회에 설명할 수 있는 법적 논거를 갖게 된 데에는, 이한기 박사의 집요한 사료 검증과 엄밀한 국제법 해석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니라, 영토 주권의 정당성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주는 학문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서거 31주기를 맞아, 이한기 박사의 학문적 열정과 공적 책임 의식, 그리고 후학 양성을 위한 헌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그의 연구가 남긴 의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한국사의 진실과 주권의 정당성을 밝히는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 이한기(李漢基) 박사 생애 요약

1917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한 이한기 교수는 일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국제법학자로, 해방 직후 한국 국제법학의 기초를 세운 대표적 학자다. 1940년대 후반 귀국해 광주의과대학과 조선대학에서 강의하며 국제법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학문 활동을 본격화했다.

1950년대에는 대한민국 국제법학회 이사를 맡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하며 국제법 이론을 체계화했다. 귀국 후 《국제법학》 상·하권을 저술해 한국 국제법학의 기본 교과서를 마련했다. 1958년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됐으며, 1960년대 한일회담 고문과 국제법학회 한국 대표로 활동하며 외교·국제법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68년 독도·간도 문제를 다룬 《한국의 영토》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를 통해 독도 영유권의 국제법적 근거를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이후 국제법학회장, 서울대 법대 학장, 사법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학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1980년 학계를 떠나 감사원장으로 공직에 진출했으며, 아시아지역 감사기구 의장, 국무총리서리 등을 맡아 국가 행정과 외교 분야에서도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국제법·영토 문제 분야의 다수 저서와 논문을 남기며 한국 국제법학과 독도 연구의 기틀을 확립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차보람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