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K-history
노인동맹단 이끈 김치보 선생,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金致寶, 金致甫 1859. 9. 17 ~ (1941. 11. 18.) 평남 평양, 건국훈장 독립장 1996)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 김치보 선생이 12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했다. 김치보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는 31일까지 한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된다.
 
김치보 선생은 1859년 9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와 연해주 이주 이전 활동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50세가 되던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러시아 이주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0년 8월에 들어와 나라가 일제에 강제병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해주 한인들은 병탄 반대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성명회를 결성하였다. 성명회는 일제의 압력으로 1910년 9월 해산되었지만 김치보를 비롯한 선언서에 서명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권업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권업회는 『권업신문』 간행, 교육진흥활동,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고 선생은 통신부장으로 활약했다.
 
대한국민노인동맹단명부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이끌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그해 3월 17일 연해주에서도 대규모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선생은 1919년 3월 자신이 운영하는 신한촌 덕창국에서 청년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46세 이상의 연령제한을 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노인동맹단은 국내 및 국외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강우규를 국내에 파견하여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총독을 처단하고자 하였다. 강우규의 의거는 실패하였지만 국·내외 독립의지를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연해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자 일제는 1920년 4월 기습적으로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고 이때 노인동맹단의 주요 간부들이 붙잡히거나, 도피하면서 사실상 해체하게 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지환 기자  youcontents@naver.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지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