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마음의 기둥에 써 붙이는 '나만의 입춘시'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살갗을 에이는 겨울의 잔상이 여전함에도, 대지는 어느새 '입춘(立春)'이라는 첫 번째 매듭을 짓고 있다. 사람들은 대문에 복(福)을 기원하는 글귀를 붙이며 밖으로부터 올 행운을 기다리지만, 진정으로 깨어 있는 영혼은 그 시선은 안으로 돌린다. 진정한 새날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내면의 결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

1860년 경신년, 서른일곱의 수운(水雲)이 마주했던 입춘이 그러했다. 그는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채, 기둥에 짧은 시 한 수를 써 붙였다.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 
(도의 기운은 영원히 머물러 사특함이 들어오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

이것은 단순한 기복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선언이자, 낡은 시대와의 절연이다. 그는 매일 세 번 청수(淸水)를 올렸다. 맑은 물 한 그릇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는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이나 안일함 대신 진리의 근원을 향해 스스로를 벼렸다. 밖은 여전히 시린 겨울이었으나, 그의 내면에서는 이미 거대한 변화의 수액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 치열한 정진 끝에 찾아온 그해 음력 4월의 어느 날, 마침내 하늘의 문이 열렸다.  전율오한 속에서 그는 공중을 진동하는 '선어(仙語)'를 듣는다. 그것은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上帝)와의 조우였다.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이 '천상문답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수운이 상제님을 만나 도통을 이루기까지 거쳤던 그 간절한 기도의 시간들을 복기해 본다. 그는 시천주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라는 천명을 받았다. 그 천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내면을 닦고 다듬는 수행(修行)이야말로, 혼돈의 세상을 건너는 유일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입춘의 문턱에 선 지금, 우리도 각자의 마음 기둥에 입춘시 하나를 써 붙여야 한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어도 좋다. 맑은 물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나를 어지럽히는 사특한 생각들을 씻어내며, 고요히 정진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게 요동쳐도 내 안의 도기(道氣)가 건재하다면, 그 어떤 시련도 침범하지 못한다. 이제 낡은 외투를 벗듯 해묵은 습관을 벗어던지자. 수운이 그러했듯, 우리도 수행의 길 위에서 자신만의 빛나는 생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진정한 봄은 꽃이 피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자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법이다.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