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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천 백관묵 가문이 바친 3대의 혼, 만주 벌판을 붉게 물들이다백관묵의 역사 정신, 아들 백삼규의 항일 투쟁으로 꽃피다

"안함로가 찬술한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제 이를 「삼성기전」 상편으로 하고, 원동중이 찬술한 것은 평안도 태천(泰川)의 진사 백관묵(白寬默)으로부터 얻은 것인데 이를 「삼성기전」 하편으로 하며, 이 두 편을 합본하여 『삼성기전』이라 한다. 『단군세기』는 홍행촌수(紅杏村叟)가 엮은 것으로... 이 책 또한 백진사에게서 얻은 것으로, 진사의 가문은 예로부터 문재(文才)로 이름이 높은 집안이라 소장하고 있는 책이 많았다." (환단고기 범례)

백관묵(1804~?)은 문재로 이름이 높은 명문 집안 출신으로 헌종 6년(1840) 식년시式年試에 진사로 합격하였고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백관묵은 단순한 장서가가 아니었다. 그는 무관 가문의 후예로서 국경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 했고, 서북 차별이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주류 역사학이 외면한 고대사의 기록들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그의 서재에 쌓여 있던 '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책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의 암흑기에 『환단고기』라는 등불로 부활하여 조국의 앞날을 밝히는 불씨가 되었다.

백관묵와 아들 백삼규(白三奎)의 독립운동

『백관묵의 집안은 대대로 학자 집안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백삼규(白三奎) 선생은 평안북도 태천(泰川) 출생으로, 어려서 박문일(朴文一) 스승 밑에서 글을 배웠으며, 박문일 스승이 세상을 떠나시고 유인석(柳麟錫) 스승의 고제자(高弟子)가 되어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가 우리 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받고 망하게 되자 백 선생은 고국 땅을 떠나 멀리 만주로 가셨다. 일본 놈들이 우리 조선 땅에 와서 우리를 압제하며 우리 것을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세도 부리며 지나는 것이 보기 싫어서 제자들 데리고 그렇게 만주 땅에 가셨던 것이다.

그는 낮이면 두 아들 진해(鎭海)와 인해(仁海)로 더불어 밭에서 일하고 밤이면 또한 아들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또는 동지(同志)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다시 빼앗을까를 의논하곤 하였다. 의논할 뿐만 아니라 뒷날 독립단(獨立團)을 조직하여 부총재(副總裁)가 되어 조맹선(趙孟善), 박장호(朴章浩) 등 여러 동지와 함께 의용군(義勇軍)까지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대대적으로 독립전취(獨立戰取)를 위해 실력을 양성하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쓰셨다.

그런데 왜적(倭敵) 판본(坂本)이라는 자가 병정 수십 명을 데리고 1920년 5월 16일 몰래 만주 땅 향로구(香爐溝)에 붙어와서 우리 청년회를 쳐부수고 우리 청년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백 선생은 그대로 가다가 그만 숨어서 기다리던 적에겐 불행히도 동지 여섯 명과 함께 붙잡히고 말았다.

적은 백 선생더러 항복하고 다른 동지들이 어디 있는 것을 대라고 악형을 했으나, 백 선생은 연해 웃으며,

"내 나이 지금 칠십이요, 오늘까지 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일하다가 이렇게 잡힌걸 내가 죽으면 죽지 어찌 항복하랴. 내 또한 죽는다 할지라도 내 뜻을 이을 자가 수천 수만 명이 뒤에 남아있는지라 내 기뻐 죽으려 하노라."

하고 끝끝내 적에게 굴하지 않고 적의 총에 맞아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아버지 시체 곁으로 뛰어온 맏아들은 동생에게 말하기를, "장례(葬禮)는 네가 맡아서 치러라. 나는 이 길로 원수를 찾아갈테니 복수하지 않고는 살아 돌아오지 않을 터이다." 하고 피스톨을 들고 원수를 찾아 떠났다. (글 박성호)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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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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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연창 2026-02-10 10:07:18

    *역사위서:환단고기 저자(계연수)는
    여러 자료조사를 통햐서 밝혀진바
    실제의 인물이 아니다고 하던데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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