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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7일, 기록과 권력, 그리고 지워진 역사
2월 7일, 기록과 권력, 그리고 지워진 역사

2월 7일은 한국사와 세계사가 교차하며 ‘기록의 의미’와 ‘역사 인식의 책임’을 동시에 환기시키는 날이다. 고려 시대 정사의 탄생에서 현대 권력형 비리의 실체, 그리고 과거사 책임을 묻는 사법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이 날짜에 새겨진 사건들은 한 사회가 무엇을 기억해 왔고, 또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1151년 2월 7일,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김부식이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정사로 평가받는 『삼국사기』를 편찬한 인물로, 신라 중심의 유교적 역사관에 따라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 『삼국사기』는 국가 차원의 공식 역사 편찬이라는 점에서 이후 한국 역사 서술의 기준점이 되었으며, 기록을 통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이후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가 한민족 고대사를 대표하는 핵심 사서라는 점과는 별개로, 이들 기록만으로 고대사의 전모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두 사서는 고구려·백제·신라를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같은 시기 약 500년간 한반도 남부에서 존속했던 가야사의 역사적 전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한민족 고대사는 오랫동안 ‘삼국 중심의 역사 구조’로 인식돼 왔고,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고대사 이해에는 분명한 한계가 남게 됐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공백은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문화정책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은 조선 강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고사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수거·은폐·왜곡하며, 고조선과 가야를 포함한 자주적 역사 계통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이는 조선이 독자적인 문명 발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식민사관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고, 그 영향은 해방 이후에도 학계와 대중의 역사 인식 속에 깊게 잔존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학술적 가치에 기대면서도, 동시에 그 이면에서 지워진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근현대사로 시선을 돌리면, 1991년 2월 7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형 비리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날로 기록된다. 검찰은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 수사에 착수하며 노태우 정권을 둘러싼 정·경·관 유착 의혹을 정면으로 다뤘다.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 사건은 개발 이익과 정치 권력이 어떻게 결탁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로까지 이어지며 한국 사회에 ‘권력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학과 문명의 영역에서도 2월 7일은 인류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 날로 기억된다. 1947년 이날, 사해 서쪽 쿰란 동굴에서 『사해문서』가 발견됐다. 이는 구약성서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로, 성서 연구는 물론 유대교와 기독교의 형성과 전파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고대 문명의 사유와 신앙 체계가 우연한 발견을 통해 현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 순간이었다.

과거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는 최근의 사법 판단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국가가 과거의 전쟁 범죄에 대해 사법적으로 책임을 인정받은 첫 사례로, 오랜 침묵과 부인의 시간에 균열을 낸 결정이었다. 판결 이후 논란은 계속됐지만, 이 사건은 ‘기억하지 않은 역사 역시 언젠가는 책임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2월 7일에 남겨진 사건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무엇을 기록했고, 무엇을 지웠으며, 그 선택의 결과를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삼국사기』에서 시작된 기록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남겨진 기록을 넘어 사라진 역사까지 함께 복원하려는 더 넓은 역사 인식이 요구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김가연 기자  k-ga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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