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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1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날 |
2026년 2월 11일은 세계 환자의 날(World Day of the Sick)이다. 병과 고통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다시 묻는 이 날은,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이라는 시인 이성복의 고백처럼, 개인의 고통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2월 11일의 역사에는 치유와 배제, 성찰과 폭력이 교차하며 인간사의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깊게 새겨져 있다.
고려 선종 4년인 1087년, 『고려초조장경』이 완성되었다. 이는 외침과 재난 속에서 불법(佛法)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집단적 치유의 염원이 목판에 새겨진 결과였다. 조선 명종 5년인 1550년에는 영주 백운동서원이 이황의 요청으로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학문을 통해 사회의 병을 고치고자 했던 유교적 이상이 국가 제도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의 2월 11일은 불안과 도피의 상징으로 남았다. 1896년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른바 ‘아관파천’이다. 이 사건은 개인 군주의 안전을 둘러싼 선택이 국가 주권과 정치 질서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이후 친일 내각의 붕괴와 친러 내각의 등장, 개혁의 중단과 전제왕권의 강화로 이어졌다.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 속에서 조선은 깊은 정치적 병증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시대를 거치며 2월 11일은 집단적 고통의 기억으로 더욱 짙어졌다. 1940년 일제는 한국인에게 창씨개명을 강제하며 이름과 정체성을 빼앗았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는 경남 거창에서 국군에 의해 양민 517명이 학살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이후 국회 폭로와 조사 방해, 주모자들의 형식적 처벌과 사면을 거치며 국가 폭력과 정의의 부재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세계 환자의 날이 환기하는 ‘치유’라는 단어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역사적 장면 중 하나다.
산업화 이후의 2월 11일은 제도적 진전과 사회적 각성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1982년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며,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19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특별법안 의결은 분단이라는 구조적 상처를 완화하려는 첫 제도적 시도였다. 2011년 서울고등법원이 긴급조치 4호를 위헌으로 판시한 것 역시,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과거에 대한 사법적 치유의 선언이었다.
같은 날의 세계사는 인간 정신의 해방과 고통의 극복을 상징하는 장면들을 남겼다. 1531년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며 국가 주권과 신앙의 문제를 재편했고, 1650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근대적 인간 인식의 기초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1990년에는 넬슨 만델라가 27년의 옥고 끝에 석방되며, 억압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에게 자유와 화해의 가능성을 선언했다.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2월 11일은 깊은 울림을 남긴 날이다. 몽타주 기법으로 영화 언어를 바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패션을 예술로 끌어올린 알렉산더 맥퀸, 세계인의 목소리를 사로잡았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과 죽음은 창조성과 고독, 성공과 상처가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네이팜탄 소녀’ 킴 푹이 2019년 인권평화상을 받은 사실은, 개인의 상처가 인류의 기억이 되고 치유의 메시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세계 환자의 날인 2월 11일은 단지 병든 몸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폭력과 배제, 침묵과 외면이라는 사회의 병을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과 회복 가능성을 놓지 않으려는 다짐의 날이다. 역사는 이 날을 통해 묻고 있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외면하는가, 아니면 함께 아파하고 치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김가연 기자 k-ga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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