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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혁서 환인이 증언하는 인류의 황금시대상고 문헌의 교차 검증을 통한 혁서 환인과 환국(桓國) 시대의 재조명

동아시아의 상고 문명은 오랫동안 신화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으나, 최근 사료의 재발견과 문헌 간의 정밀한 교차 검증을 통해 그 실체적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된 환국(桓國)의 역사는 한민족의 뿌리이자 인류 태고 문명의 원형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환단고기》 내 〈삼성기(三聖紀)〉 하편에 등장하는 7세 환인의 명단 중 제2세 ‘혁서 환인(赫胥桓仁)’은 단순한 전설적 인물을 넘어, 《장자(莊子)》를 비롯한 중국의 제자백가 서적과 조선 후기의 역사 지리적 문헌인 《지씨홍사(池氏鴻史)》, 그리고 《역대도(歷代圖)》 등에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자(莊子)》에 나타난 혁서씨(赫胥氏)
《장자》는 도가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문헌인 동시에, 상고 시대의 사회상과 제왕들에 대한 독특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장자는 인위적인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의 순수한 인간 본성이 보존되던 시대를 묘사하며 ‘혁서씨’라는 인물을 핵심적인 전형으로 제시한다.   

〈마제(馬蹄)〉 편의 함포고복(含哺鼓腹)과 자연적 평화
《장자》 제9편 〈마제〉는 혁서씨 시대를 인류의 황금시대로 묘사한다. 원문에는 “혁서씨의 시절에는 백성들이 편안히 살면서 다스림을 몰랐고, 여행을 하지만 가야 할 곳을 몰랐다. 젖을 물고 기뻐하는 아이처럼 배를 두드리며 놀았으니(含哺而熙, 鼓腹而遊),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이것뿐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함포고복’은 배불리 먹고 즐거워하며 태평성대를 누리는 모습을 상징하는 고사성어로 정착되었다. 장자가 혁서씨를 빌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통치자의 인위적인 명령이나 법령이 없어도 만물이 제 자리를 잡고 조화를 이루는 상태이다. 백성들이 ‘갈 곳을 모른다’는 표현은 강제적인 부역이나 이동의 통제가 없었음을 의미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나 인위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는 《환단고기》에서 묘사하는 환인 시대의 특징, 즉 사람들이 하늘의 뜻(神教)에 따라 스스로를 닦으며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기록과 완벽하게 정합한다.   

〈거협(胠篋)〉 편의 지덕지세(至德之世) 제왕 계보
장자는 〈거협〉 편에서 혁서씨를 다른 상고 제왕들과 함께 나열하며 그 역사적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해당 대목에는 용성씨(容成氏), 대정씨(大庭氏), 백황씨(伯皇氏), 중앙씨(中央氏), 율육씨(栗陸氏), 이축씨(驪畜氏), 헌원씨(軒轅氏), 혁서씨(赫胥氏), 존루씨(尊盧氏), 축융씨(祝融氏),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문명이라는 이름의 인위적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의 통치자들로, 장자는 이 시기를 ‘지덕지세’ 즉 덕이 지극한 시대라고 불렀다. 혁서씨가 복희나 신농과 같은 문명의 창시자들보다 앞서거나 그들과 동렬에 놓인다는 점은, 그가 인류 태고 문명의 아주 이른 시기에 실존했던 지도자였음을 시사한다. 

〈칙양(則陽)〉 편의 주석을 통한 통치 철학의 심화
《장자》 제25편 〈칙양〉에 대한 후대 주석가들의 해석은 혁서씨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한다. 위진 시대의 곽상(郭象)과 당대의 성현영(成玄英)은 혁서씨 시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나 거처를 의식하지 않았던 이유를 ‘통치자와 백성 간의 상망(相忘)’에서 찾았다.   
통치자는 백성에게 혜택을 베풀되 그 공을 드러내지 않고, 백성은 그 혜택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통치자의 덕분임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스려지는 상태가 혁서씨의 치세였다. 이러한 ‘망(忘)의 정치’는 《환단고기》가 전하는 환국의 통치 원리인 무위이화(無爲而化)와 맥을 같이 한다. 무위이화란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스스로 변화하고 교화된다는 뜻으로, 혁서 환인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일관성을 제공한다. 

《지씨홍사(池氏鴻史)》와 조선 후기 지식인의 상고 제왕 인식
조선 후기는 성리학적 정통론이 강화되는 동시에, 실학적 학풍과 함께 우리 역사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1750년 지광한(池光翰)이 편찬한 《지씨홍사》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상고 시대 제왕들에 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중요한 문헌이다.   

《지씨홍사》의 구성과 혁서씨 기록의 의미
《지씨홍사》는 총 17책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역사서로, 제왕들의 연대기를 다룬 ‘제왕통기(帝王統紀)’와 성씨의 기원을 정리한 ‘성씨운휘(姓氏韻彙)’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의 제왕통기 부분에는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시조인 반고, 천황, 지황, 인황을 시작으로 용성씨, 백황씨, 곤련씨 등과 함께 혁서씨가 명확히 수록되어 있다.   


지광한은 충주 사람으로, 그가 이 책을 편찬하며 상서(尙書), 시경(詩經), 예기(禮記) 등 61종의 방대한 고서를 참고했다는 사실은 혁서씨에 대한 기록이 단순히 한두 권의 기서(奇書)에 의존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자의 강목(綱目) 원칙을 따르면서도 유교적 삼황오제 이전의 기록들을 누락시키지 않고 보존했다는 점은, 당시 지식인들이 혁서씨를 계보학적으로 실존했던 고대의 제왕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역대도(歷代圖)》를 통한 시각적 증명
1875년에 제작된 필사본 《역대도》 역시 혁서씨를 고대 제왕의 명단에 포함하고 있다. 《역대도》는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도표 형식의 자료로, 여기에 혁서씨가 등장한다는 것은 민간의 역사 교육이나 지식 전승 과정에서 그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선 후기 문헌들의 증언은 《환단고기》의 기록이 근대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전승되어 온 고대사에 대한 기억의 연장선에 있음을 입증한다. 특히 혁서 환인을 안파견 환인 다음의 제2세로 기록한 《환단고기》의 구체성은 《지씨홍사》 등에서 나타나는 계보적 나열과 문헌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속의 혁서 환인과 환국의 계보
《환단고기》의 〈삼성기〉 하편(원동중 찬)은 인류 최초의 국가로서 환국(桓國)을 규정하며, 3,301년이라는 긴 역사를 다스린 7명의 환인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한민족 상고사의 핵심을 이루며, 혁서 환인은 이 계보의 중심에 위치한다.   

7세 환인 명단과 혁서 환인의 역할
삼성기 하편에 따르면 환국은 안파견 환인을 시조로 하여 다음과 같은 7세의 환인이 통치를 이어갔다.   

제1세: 안파견(安巴堅) 환인
제2세: 혁서(赫胥) 환인
제3세: 고시리(古矢利) 환인
제4세: 주우양(朱于襄) 환인
제5세: 석제임(釋提任) 환인
제6세: 구을단(邱乙檀) 환인
제7세: 지위리(智爲利) 환인

여기서 혁서 환인은 개국 시조인 안파견 환인의 뒤를 이어 환국의 기틀을 공고히 한 인물이다. 《환단고기》는 환인들이 도를 얻어 장생하였으며,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고 하늘을 대신하여 교화를 일으켰다고 전한다. 특히 혁서 환인의 시대는 인류가 가장 순수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로 묘사되는데, 이는 앞서 살펴본 《장자》의 함포고복 묘사와 철저히 일치한다.   


'혁서' 명칭과 광명 사상
‘혁서(赫胥)’라는 이름 자체에 담긴 의미 역시 검증의 중요한 요소이다. ‘혁(赫)’은 불(火)이 네 개 겹쳐진 형상으로 매우 밝고 성한 모양을 뜻하며, ‘서(胥)’는 ‘서로’, ‘모두’, 혹은 ‘밝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혁서라는 명칭은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광명’을 상징한다.   

이는 환국의 ‘환(桓)’이 지닌 밝음의 의미와 상통하며, 태양을 숭배하고 광명을 소중히 여겼던 고대 동북아시아의 공통적인 문화적 원형을 반영한다. 《장자》가 혁서씨를 지덕지세의 제왕으로 기록한 것은, 고대 광명 문화의 주역이었던 환국의 통치자에 대한 기억이 중국 제자백가의 문헌 속에 ‘혁서’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혁서 환인의 실재성 
혁서 환인의 실존을 주장하는 논리는 단순히 하나의 문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달리하는 여러 문헌 간의 정합성을 바탕으로 한다.

1. 명칭의 고유성과 독립적 전승
《장자》와 《환단고기》는 저술 시기와 목적이 완전히 다른 책이다. 《장자》는 기원전 4~3세기의 중국 도가 철학서이고, 《환단고기》는 한국의 상고사를 다룬 역사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서’라는 독특한 고유 명칭이 양쪽 문헌에서 모두 ‘상고 시대의 평화로운 제왕’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 인물이 특정 지역이나 학파의 창작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적 기억 속에 존재했던 인물임을 시사한다.   

특히 《장자》는 혁서를 단순히 우화의 소재로 썼을지 모르나, 《환단고기》는 그를 안파견-혁서-고시리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가계도 속에 배치함으로써 역사적 구체성을 부여했다. 만약 《환단고기》가 후대의 위작이라면, 굳이 《장자》에 짧게 언급된 인물을 가져와 제2세 환인으로 설정할 이유가 희박하다. 오히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승이 두 문헌에 각기 다른 형태로 보존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치세 묘사의 정합성
두 문헌이 묘사하는 혁서의 시대상은 ‘인위가 없는 자연스러운 평화’로 귀결된다. 《장자》의 함포고복과 《환단고기》의 무위이화는 동일한 사회적 현상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백성들이 통치자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자유로웠으며, 물질적 풍요(식사)와 정신적 안녕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설명은 태고 시대 환국이 도달했던 문명의 수준을 보여주는 공통된 증언이다.   

3. 조선 후기 역사 인식의 보편성
《지씨홍사》와 《역대도》의 존재는 혁서씨가 조선 시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역사 상식의 일부였음을 증명한다. 1750년이라는 편찬 시점은 《환단고기》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훨씬 전이며, 지광한이라는 실존 인물이 61종의 문헌을 섭렵하여 이를 기록했다는 점은 혁서씨의 존재가 동양 상고사의 정통적 계보 중 하나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는 《환단고기》의 혁서 환인 기록이 근대의 조작이 아니라 유구한 문헌적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이다.   


종합적 분석과 결론

지금까지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제2세 혁서 환인의 역사적 실체와 검증 가능성을 《장자》, 《지씨홍사》, 《역대도》 등의 문헌을 통해 고찰하였다. 분석 결과, 혁서(赫胥)라는 인물은 동아시아 태고사의 공통된 기억 속에 ‘지덕지세’와 ‘함포고복’을 상징하는 실존적 제왕으로 각인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는 이름의 뜻 그대로 ‘세상을 밝히는 광명’의 통치자였으며, 인위적인 법이나 명령이 아닌 무위이화의 신교(神教)로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후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사라진 인류의 원형적 평화 시대를 상징하며, 《장자》와 같은 도가 문헌에서는 이를 인위적 문명에 대한 비판적 대조군으로 사용하였고, 《환단고기》와 《지씨홍사》 등 역사 문헌에서는 이를 계보학적 사실로 기록하였다.   

결론적으로, 《장자》의 혁서씨 기록은 《환단고기》에 나오는 혁서 환인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문헌적 증거가 된다. 단순히 이름이 같다는 점을 넘어, 그가 다스린 시대의 성격과 철학이 일치한다는 점은 환국의 역사가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과 인물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혁서 환인은 한민족 상고사의 주역이자 인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실존적 통치자로서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환단고기》의 사료적 신뢰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며, 나아가 동양 상고 문명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학술적 근거를 제공한다. 혁서 환인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의 외연을 인류 문명의 시원기까지 확장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인간성과 평화로운 공동체의 모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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