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귀 위원회의 답변(접수번호 1AA-2602-0397065)을 검토하고,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수호해야 할 국편의 안일한 인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다음과 같이 재항의한다.
1. '기록된 데이터'의 함정: 가해자의 기록이 어떻게 진실이 되는가?
귀 위원회는 "정비가 완료된 데이터에 한하기 때문에 전체 규모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3.1운동 당시 일제는 자신들의 학살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소각하거나 암매장했고, 기록 자체를 조작·누락했다. 가해자가 작성한 부실한 기록을 바탕으로 '실증'을 논하는 것은, 강도에게 피해 물품 목록을 작성하게 하고 그 수치가 적다고 해서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 일본 외무성의 정치적 악용에 '학술적 근거'를 제공한 책임 2019년 100주년 기념사 당시, 일본 외무성은 귀 위원회의 이러한 '축소된 수치'를 근거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했다. 귀 위원회가 내세우는 그 '변동 가능한 수치'가 일본에는 "한국 정부 기관도 인정한 다툼 있는 숫자"라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학술적 치밀함을 빙자한 귀 위원회의 소극 행정이 결과적으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이적 행위'가 되었음을 인정하는가?
3. '최소치'라는 면피성 표현 뒤에 숨은 식민사관의 잔재
귀 위원회는 답변에서 일부 연구자의 말을 빌려 934명 혹은 700~1,100명을 언급하며 이것이 '최소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대중에게 공개되는 데이터베이스 정면에 박은식 선생의 '7,509명'이 아닌, 조선총독부 수치와 유사한 수백 명 단위의 통계를 배치한 의도가 무엇인가?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사료보다 총독부의 자료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로 간주하는 귀 위원회의 뿌리 깊은 식민사관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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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사편찬위원회인가, 일본사편찬위원회인가?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했다는 비판을 받는 귀 위원회가 선조들의 피맺힌 절규인 3.1운동의 희생자 수를 '데이터 정비'라는 차가운 단어로 난도질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임시정부의 기록은 '과장'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왜 일제의 기록은 '실증의 기초'로 삼는가? 귀 위원회의 존재 목적은 일제의 기록을 검증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강점당한 조국의 역사를 복원하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있음을 잊었는가?
우리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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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는 3.1운동 데이터베이스 메인 화면에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가들의 기록(7,509명 등)을 일제 측 자료보다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현재의 수치가 일제에 의해 현저히 축소된 것임을 명확히 공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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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일본의 역사 왜곡에 빌미를 제공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죽은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선조들의 피와 항쟁의 기록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자문하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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