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신동아 인터뷰는 강단 사학계가 가진 확신과 논리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문헌 비판과 인물 추적을 통해 《환단고기》를 ‘조작된 위서’로 규정하고, 이를 추종하는 이들을 국수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힌 ‘사이비’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의 정연한 논리 이면에는 대중의 역사적 갈증을 외면하는 지독한 엘리트주의와 학문적 폐쇄성이 도사리고 있다.
메신저 공격으로 메시지를 덮으려는 비겁함
장 교수의 비판은 본질보다 주변부에 집착한다. 그는 편찬자인 계연수의 실존 여부나 전승자인 이유립의 행적을 캐는 데 화력을 집중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인신공격의 오류’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료는 전란과 세월 속에서 실전되었다가 구전이나 암송, 혹은 극적인 발견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왔다. 서지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에 담긴 고대 대륙의 기억과 민족적 상상력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것은 학문적 엄숙주의를 가장한 폭력에 가깝다. 사료의 진위는 내용의 내적 정합성과 고고학적 가능성으로 들여다보아야지, 전달자의 ‘뒷조사’로 판가름할 사안이 아니다.
대중을 ‘연구 대상’으로 보는 오만함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상고사 열풍을 두고 “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일갈한 부분이다. 이는 대중의 순수한 역사적 열망을 일종의 집단적 심리 결함이나 지적 미성숙으로 치부하는 오만한 발상이다. 강단 사학이 일본 식민 사학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반도 안에 갇힌 ‘박제된 역사’를 가르칠 때, 대중은 스스로 뿌리를 찾아 나섰다. 그 갈증을 채워주지 못한 학계가 오히려 대중을 ‘환빠’라는 멸칭으로 묶고 관찰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은 주객전도다. 역사는 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행위를 ‘사이비’로 매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민 사학의 잣대로 자국사를 재단하는 모순
장 교수는 식민 사학 척결을 외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일제가 한국사를 축소하기 위해 고안한 ‘실증주의’라는 좁은 틀을 절대 진리인 양 휘두른다. 문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는 기록을 말살당한 피지배 민족에게는 가혹한 잣대다. 가해자가 만든 도구로 피해자의 기억을 검열하며 “증거를 가져오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학의 자세인가. 식민 지배의 논리를 답습하면서 식민 사관을 비판한다는 주장은 형용모순에 불과하다.
역사는 해부용 시체가 아니다
장 교수는 《환단고기》를 사료 비판의 “좋은 교보재”라 칭하며 학문적 유희를 즐긴다. 누군가에게는 민족의 자긍심이자 잃어버린 혼을 찾는 절박한 투쟁인 사안을, 상아탑 안에서 해부용 시체처럼 다루는 태도는 냉소적이다 못해 잔인하다. 역사는 살아있는 민족의 숨결이며 미래를 향한 동력이다. 상상력을 거세하고 부정의 언어만 가득한 역사학은 더 이상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제 강단 사학은 대중을 가르치려 들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환단고기》에 열광하는지 그 뼈아픈 이유부터 성찰해야 한다. 닫힌 세계를 수호하려는 방어기제를 버리고, 민족사의 지평을 넓히려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학자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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