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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3월 4일, 역사는 봄을 준비했다
3월 4일, 세종의 용비어천가 10권 완성 <AI 그림>

“쓸쓸한 산길 모퉁이를 돌다가 작은 들꽃 하나를 보았다.” 시인 이동순의 시구처럼, 아직 찬 기운이 남은 삼월 초순의 산자락에도 작은 생명은 고개를 든다. 베트남의 명상가 틱낫한이 말했듯, “진흙이 없으면 연꽃도 피어나지 못한다.” 3월 4일은 인류 역사 속에서 고통과 격변, 그리고 그 속에서 움튼 새로운 질서가 교차한 날로 기록돼 있다.

고려 문종 17년인 1063년, 거란이 대장경을 보내오며 동아시아 불교문화 교류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1445년에는 세종 27년을 맞아 정인지와 권제 등이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 『용비어천가』 10권을 완성해 왕에게 올렸다. 이는 새 문자 창제의 결실이자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서사로, 이후 국문학과 고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됐다.

그러나 같은 땅 위에서 비극도 이어졌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한 병인박해를 단행했다. 수천 명의 신도가 처형되고 프랑스 선교사들이 희생된 이 사건은 조선의 쇄국 정책과 서구 열강의 충돌을 예고한 격변의 서막이었다. 1907년 의병장 노응규는 일제가 주는 밥을 거부하며 단식하다 옥중에서 생을 마쳤다. 민족 자존의 의지는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통과했다.

현대사에서도 3월 4일은 전환의 순간을 품고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 별장 ‘안가’를 철거해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라고 지시하고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뇌사자 장기이식이 공식 인정되며 생명 윤리의 새 지평이 열렸다. 2021년에는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이 사퇴를 선언하며 정국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연의 경고도 있었다. 2022년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은 213시간 동안 이어지며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남겼다. 전국소방동원령과 국가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된 이 재난은 기후위기 시대의 현실을 일깨웠다.

세계사로 눈을 돌리면 더욱 극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 기원전 479년, 유교의 시조로 불리는 공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상은 이후 동아시아 문명의 정신적 기둥이 됐다. 1832년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프랑스 문헌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별세해 고대 문명의 비밀을 풀어낸 업적을 남겼다.

1861년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1933년에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을 선언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TVA)로 상징되는 뉴딜은 국가 개입을 통한 경제 재건의 모델이 됐고, 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1877년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됐다. 고난과 사랑, 환상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세계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3월 4일은 이렇게 고통과 창조, 탄압과 개혁, 절망과 재생이 교차한 날이다. 들꽃은 모진 겨울을 견딘 뒤에야 얼굴을 내민다. 역사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억압 속에서도 언어는 태어나고, 재난 속에서도 제도는 개혁되며,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는 움튼다.


 

김가연 기자  k-gaye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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