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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의 은혜를 잊었는가: 2,500년의 우정이 포화로 변하기까지

역사가 기억하는 '기름 부음 받은 자', 고레스
성경 이사야서 45장에는 이방 국가의 왕으로서는 유례없는 칭송을 받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의 창시자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입니다. 기원전 538년, 그는 바빌론을 정복한 뒤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고레스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민족의 맥을 잇게 해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은 유대교가 현대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토대였으며, 이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우정의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망각인가, 생존인가?
오늘날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적 행동을 불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은 "어떻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푼 나라를 칠 수 있는가"라며 개탄합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히 '배은망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은 역사의 낭만보다 훨씬 차갑게 작동합니다. 현재의 갈등은 이란의 찬란한 역사나 고레스 대왕의 정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란의 '현 체제(Islamic Republic)'와의 충돌이기 때문입니다.

관용의 상징이었던 페르시아의 정신은 사라지고,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이라 부르며 절멸을 외치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기엔 당장 눈앞에 닥친 핵 위협과 대리 세력(헤즈볼라, 하마스 등)의 공격이 너무나 실존적인 위협이 된 것입니다.

고레스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때
물론, 정치가 역사적 부채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현재의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이란을 타격하는 것은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언정, 고레스 대왕이 심어놓은 '공존의 씨앗'을 완전히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의 땅을 초토화하는 것이 아니라, 고레스 대왕이 보여주었던 '포용과 관용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을 구해준 페르시아의 품격을 기억해야 하며, 이란 역시 고레스가 가르쳤던 인권과 평화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비극의 고리를 끊으려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과거의 원한이나 현재의 공포에만 매몰된 민족에게도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은 고레스 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화가 아니라, 2,500년 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유대인들이 품었던 그 감사와 평화의 마음을 되살리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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