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은 단순한 조선의 왕궁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적 자부심과 정체성이 응축된 상징적 공간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복궁 제모습 찾기' 사업을 통해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수많은 전각이 제 자리를 찾았고, 2001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웅장한 중문이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을 복원하면서 이름까지 온전히 되찾아주었는가에 대해 냉정하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이름은 '흥례문(興禮門)'이다. 하지만 이 문의 태생적 이름은 '홍례문(弘禮門)'이었다. 조선 건국 초기, ‘예(禮)를 널리 펼친다’는 숭고한 유교적 가치를 담아 명명된 이름이다. ‘홍(弘)’이라는 글자는 단순히 크다는 의미를 넘어, 백성 모두에게 성현의 도리가 미치게 하겠다는 건국 주체들의 철학적 의지가 담긴 핵심 키워드였다.
이 이름이 바뀐 이유는 서글프게도 ‘사대(事大)’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고종 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당시 청나라 건륭제의 본명인 ‘홍력(弘曆)’에 포함된 ‘홍(弘)’자를 피해야 한다는 피휘(避諱)의 논리가 작용했다. 타국 황제의 이름을 공경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 정궁의 핵심 전각 이름을 스스로 고쳐버린 것이다. 이는 자주국가를 지향하던 조선의 기틀이 대외적 압박 속에 타협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의 산물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고종 중건 당시의 역사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므로 '흥례문'이라는 명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복궁 복원'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복원은 단순히 외형적인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는 '정신적 복원'이어야 한다.
중국 황제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개칭된 명칭을 오늘날까지 고수하는 것은, 21세기 자주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홍례문'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일은, 조선 초기가 지향했던 원형의 철학을 복원하는 동시에 사대주의의 잔재를 씻어내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이름은 존재의 본질을 담는다. '홍(弘)'이라는 글자가 지닌 광활하고 포용적인 가치가 다시금 경복궁의 중심에 울려 퍼질 때, 우리의 역사 복원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관련 학계는 지금이라도 흥례문의 제 이름 찾기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역사 앞에 다해야 할 예(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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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문화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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