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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빌려 오늘을 묻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조용한 질문
고전을 빌려 오늘을 묻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일본 문단에는 때때로 나이보다 깊이가 먼저 도착한 듯한 작가가 등장합니다.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제172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스즈키 유이 역시 그런 이름으로 읽힙니다. 2001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후쿠시마 고리야마에서 자랐고 2024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로 아쿠타가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는 21세기 출생 작가 가운데 처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인물이 됐습니다.

이력만 보면 신예의 등장입니다. 그러나 작품이 풍기는 공기는 의외로 오래된 서가의 냄새에 가깝습니다. 책 제목부터 도발적입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세계문학의 거인 괴테를 소환해버린 이 제목은 마치 더 이상 새롭게 말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게 말하는 시대일수록 진짜 자기 언어가 필요하다는 역설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단순한 고전 예찬이나 지적 유희에 머물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학평론가 고노스 유키코는 이 작품을 두고 문학적 장치가 풍부한 작품이라고 짚었고 수상 과정에서도 강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스즈키 유이는 매우 젊지만 놀랍게도 고전과 사유의 문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입니다.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대학원 재학 중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어린 시절 교회 환경에서 자라 성경을 가장 가까운 독서 경험으로 지녔다고 합니다. 또 동일본대지진의 경험이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많이 읽는 작가라는 사실도 인상적입니다. 한 보도는 그가 1년에 1000권 가까이 읽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배경은 그가 왜 단순한 줄거리보다 언어와 인용과 사유의 구조 자체를 작품의 중심에 놓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괴테라는 이름의 무게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말해졌다고 믿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정보는 넘치고 명언은 즉시 소비되며 누군가의 말은 맥락 없이 잘려 소셜미디어를 떠돕니다. 고전은 읽히기보다 인용되고 사유는 살아내기보다 전시됩니다.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거대한 이름을 빌려 권위를 세우는 시대가 아니라 그 이름 뒤에 숨어 스스로 말하기를 멈춰버린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뜻입니다.

 

고전을 빌려 오늘을 묻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문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은 오늘의 공론장을 향한 비평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기 말 대신 남의 말을 빌려옵니까. 얼마나 자주 읽은 척하고 이해한 척하며 살아갑니까. 얼마나 자주 깊이 생각하기보다 이미 정리된 문장을 소비합니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제목은 언뜻 완결처럼 들리지만 실은 결핍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그 뒤에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지식의 윤리에 관한 것입니다. 많이 안다는 것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다릅니다. 더구나 타인의 사유를 끌어와 자신의 권위처럼 사용하는 일은 지적 풍요가 아니라 지적 빈곤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바로 그 허위를 건드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전을 안다는 것은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과 싸워본 경험이어야 하고 타인의 문장을 인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장식으로 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검증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독서의 품격을 묻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유난히 속도를 숭배합니다. 짧은 요약이 긴 독서를 대신하고 한 줄 평이 한 권의 책을 대체합니다. 인문학마저 실용성과 효율의 언어로 번역되기를 강요받습니다. 그런 시대에 스즈키 유이의 작품은 다소 불편한 방식으로 독자를 멈춰 세웁니다. 서둘러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고전을 한 번 더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생각의 지름길만 찾는 사회에서 사유의 우회를 회복하라고 권하는 듯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오늘의 사회에 건네는 가장 묵직한 메시지일지 모릅니다.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 자체도 흥미로운 상징입니다. 그는 젊음으로 소비되는 신예가 아니라 오래된 질문을 현재형으로 되살리는 유형의 작가에 가깝습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당시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은 오래되었으면서도 새로운 사랑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이 말은 단지 로맨스를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언어 인간과 기억 인간과 고전 사이의 오래된 관계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써내고 싶다는 문학적 선언처럼 들립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아마 어떤 독자에게는 어렵고 어떤 독자에게는 지나치게 지적이며 또 어떤 독자에게는 기묘하게 매혹적인 작품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단순히 한 젊은 작가의 수상작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독서가 어디쯤 와 있는지 우리의 말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것인지 우리의 사유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를 묻는 사회적 텍스트입니다.

결국 이 책의 진짜 힘은 괴테를 불러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괴테를 불러내고도 결국 독자를 자기 자신 앞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데 있습니다. 모두가 이미 누군가의 말을 알고 있다고 믿는 시대에 정작 자기 말은 비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것. 바로 그 점에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고전에 관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많이 인용하는 사회보다 깊이 사유하는 사회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그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메시지가 지금 이 작품을 더욱 오래 남게 할지도 모릅니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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