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 중에서 낙랑군 이외의 군은 기원전 75년 이전에 통페합되거나 요동 방면으로 이동했다. 그럼에도 낙랑군은 장기간 존속했다. 비록 세력범위는 신축했지만 공손씨 정권·조위·서진 왕조까지 중국계 왕조의 동방 거점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3세기 전반 공손씨 정권은 낙랑군 남부에 대방군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다 313년과 314년에 고구려가 낙랑군·대방군을 공격했고 이로부터 그 지역을 차지했다. (이정빈 역사학자, 한국 스켑틱 2026년 봄호 84쪽)
최근 역사학자 이정빈은 한국 스켑틱이라는 잡지 기고를 통해 낙랑군이 기원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무려 400년 넘게 평양 일대에서 ‘중국계 왕조의 동방 거점’으로 명맥을 이어갔다고 강변했다. 이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아니라, 과거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을 ‘태생적 타율성의 역사’로 규정하기 위해 조작한 ‘반도사관’의 논리적 복제에 불과하다. 이정빈의 서술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투쟁사를 난도질하고, 민족의 자부심에 비수를 꽂는 행위다.
1. ‘요동 낙랑’을 지우려는 이정빈의 비겁한 실증주의
이정빈은 공손씨와 조위, 서진의 명맥을 운운하며 낙랑의 장기간 존속을 기정사실화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고대 중국 사서들이 기록한 낙랑군의 수성현(遂城縣)과 갈석산(碣石山)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북성 진황도에 번연히 존재하는 갈석산을 외면한 채, 일제가 평양 토성동에서 ‘발굴’했다는 유물 몇 점을 근거로 한반도 낙랑설을 고수하는 것은 학문적 양심의 포기다.
낙랑은 애초부터 요동에 있었다. 한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고조선 유민들과 북방 기마민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요동 방면으로 밀려났거나, 실질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서류상의 행정구역’이었다. 이를 두고 ‘중국계 왕조의 거점’ 운운하는 것은 중화사관과 식민사관이 결탁한 왜곡된 해석일 뿐이다.
2. 400년 ‘알박기’가 가능했다는 망상과 민족 자존심의 훼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고구려라는 북방의 강자가 태동하고, 백제가 한강 유역에서 제국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중국의 일개 군현이 한반도의 심장부인 평양에서 400년 동안 안온하게 ‘거점’ 노릇을 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이정빈의 주장은 우리 선조들을 외세의 지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나약한 민족으로 비하하는 비겁한 논리다.
공손씨 정권이 대방군을 신설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당시 요동을 할거하던 군벌 세력이 머나먼 황해도까지 내려와 군을 설치했다는 것은 군사 전략적으로도, 보급 측면에서도 불가능에 가깝다. 대방군은 요동반도 연안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이며, 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중국계 세력의 마지막 발악적 방어선이었을 뿐이다.
3. 미천왕의 쾌거는 ‘탈환’이지 단순한 ‘공격’이 아니다
313년과 314년 고구려 미천왕의 행보는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다. 단군조선과 번조선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한 끈질긴 민족적 염원이 결실을 본 ‘고토 수복 전쟁’의 완성이다. 요동에 잔존하며 한반도 진출을 노리던 외세의 찌꺼기를 완전히 걷어낸 역사적 결단인 것이다.
이를 두고 낙랑군이 그때까지 평양에 있었다고 우기는 것은, 마치 해방 직전까지 일제가 한반도를 실효 지배했으니 우리 역사가 일본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4. 이정빈 식(式) 역사관의 종언을 고하라
이정빈을 비롯한 강단사학자들은 ‘실증’과 ‘객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식민사학의 틀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하지만 진정한 실증은 사료의 행간에 숨겨진 민족의 맥박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정빈의 서술은 우리 역사의 시작을 중국의 식민지로 설정하려 했던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같은 일본 관변학자들의 미소를 자아낼 뿐이다.
우리는 더 이상 평양을 중국의 거점으로 내어줄 수 없다. 낙랑은 요동에 있었다. 이 명백한 진실을 부정하는 이정빈의 학설은 학문이 아니라 ‘역사 폭력’이다. 이제라도 강단사학은 식민지배의 잔재를 털어내고,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 조상들의 기개를 복원하는 주체적 역사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 잘못된 지도로 역사를 가르치는 이정빈 같은 학자에게는 더더욱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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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AI 스튜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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