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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석 90주기] 700만의 꿈을 이끌었던 시대의 거인, 월곡 차경석을 다시 묻다- 서거 90주기, 일제의 프레임을 넘어 독립운동의 심장부였던 보천교(보화)를 복원하며

1936년의 초여름, 전북 정읍의 대흥리에서는 한 시대의 거대한 서사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道家였던 보천교(普天敎)의 창시자, 월곡(月谷) 차경석(車京石)의 서거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90주기를 맞이한다. 한때 조선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700만 구도자를 거느리며 식민지 지배 정점에 서 있던 일제를 전율케 했던 이 인물은, 애석하게도 오늘날 우리 기억 속에서 ‘유사종교의 교주’라는 낡은 딱지에 갇혀 있다.

이제는 그 봉인을 풀어야 할 때다. 차경석과 보천교가 걸어온 길은 단순한 사상의 전파가 아니라, 나라를 잃은 민중들에게 ‘조선은 죽지 않았다’는 희망을 심고 실질적인 독립의 토대를 닦았던 거대한 국가 건설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동학의 피, 개벽의 꿈으로 피어나다

차경석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근대사의 축약판이다. 그의 부친 차치구는 동학농민혁명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접주였다. 15세의 소년 차경석이 분살당한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며 느꼈을 울분은 평생을 관통하는 항일 정신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증산 상제님의 뜻과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관념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정밀한 '60방주' 조직을 구축했는데, 이는 단순한 종교적 위계가 아니라 장차 독립할 국가의 행정망을 미리 설계한 '지하 정부'의 성격이 짙었다.

독립운동의 마르지 않는 젖줄, 보천교

우리가 보천교를 독립운동사의 전면에 세워야 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군자금에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이 "정읍에 큰 신세를 졌다"고 회고할 만큼, 보천교는 임시정부의 보이지 않는 젖줄이었다. 1920년대 초반에만 수만 엔의 자금을 전달했으며, 발각되지 않은 기록들을 감안하면  이는 당시 물가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그들의 지원은 이념의 경계를 가리지 않았다. 청산리 전투 이후 고통받던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에 2만 엔과 5만엔을 보냈고, 의열단의 폭탄 투척 거사 이면에도 보천교의 자금이 흘러갔다. 단재 신채호의 부인 박자혜 여사가 보천교의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보천교가 단순한 종교 단체를 넘어 독립운동의 '병참기지'였음을 방증한다.

사라진 궁궐, 십일전이 남긴 메시지

차경석은 정읍 대흥리에 조선 궁궐의 법도를 따른 거대한 본소 '십일전(十一殿)'을 세웠다. 일제는 이를 보고 '대흥리에 또 다른 천자가 나타났다'며 경악했다. 이는 총독부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건축적 저항이었다. 그가 서거한 후 일제는 기다렸다는 듯 건물을 해체해 경매에 넘겼다. 그때 뜯겨 나간 십일전의 목재들이 지금 서울 조계사 대웅전의 뼈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 불교의 중심지에 민족종교의 성전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역사의 기묘한 아이러니다.

90년의 침묵을 깨고 역사로 복원되어야

일제는 보천교를 와해시키기 위해 '사교'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간부들을 포섭하여 내부 분열을 획책했다. 해방 이후 우리가 배운 역사 교과서 역시 이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되는 일제 정보기관의 기밀문서들은 차경석을 '가장 위험한 요시찰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서거 90주기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차경석을 종교의 틀에서 끌어내어 민족운동의 거장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가 꿈꿨던 '시국(時國)'은 단순히 신비로운 내세가 아니었다.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700만 민초들의 열망이 응집된 미래 국가의 청사진이었다.

차경석의 서거 90주기는 잃어버린 한국 근대사의 한 고리를 잇는 시작점이 되어야 하고 보천교가 그 명예를 회복하는 시간대가 되어야 한다. 정읍의 들판에 심었던 독립의 씨앗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 속에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이제는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다.

 

 

 

 

 

 

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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