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의 화려함에 가려져 있던 두여 해변은, 아는 사람만 조용히 찾아드는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다. 이곳의 이름인 '두여'에서 '말 두(斗)' 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해변이 품은 깊은 속내를 읽어낼 수 있다.
곡식을 담는 그릇, 풍요를 측량하다
'두(斗)'는 곡식의 양을 재는 단위이자 그릇이다. 해변 뒤편의 산세가 쌀을 재는 '말'을 엎어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그 안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채워진 풍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예부터 서해의 어민들에게 바다는 생존의 터전이었다. 두여 해변은 그들에게 자연이 허락한 거대한 '말(斗)'이었을 것이다. 썰물 때마다 드러나는 광활한 갯벌과 바위 틈은 바다가 내어주는 선물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그 너그러운 그릇에서 삶을 일구어 왔다. 그래서 두여는 단순히 '모양'이 아닌, '채워짐'의 미학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도여(道輿) , 도를 닦던 마을
두여 해수욕장은 과거 '도여(道輿)'라고 불렸던 기록이 존재하며, 이는 지리적 형상이 수려하고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예부터 도인(道人)들이 모여 도를 닦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도인들이 이곳을 수행의 적지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두여 해안이 단순히 경관이 좋은 곳을 넘어, 지기(地氣)가 맑고 우주의 이법(道)을 체득하기에 적합한 공간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후 '도여'가 '두여'로 변천된 과정은 소리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수행의 주체인 '도(道)'에서 수행의 대상이자 기준인 '두(斗, 북두칠성)'로 그 상징적 무게중심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하늘의 북두(北斗), 바다에 내려앉다
'두(斗)'는 또한 밤하늘의 길잡이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두칠성은 하늘의 모든 별자리를 다스리고 사계절의 변화를 주관하며, 인간의 생로병사와 복록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별자리로 간주된다. '두여'라는 지명에 이 글자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이 북두칠성의 기운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명당임을 암시한다. 특히 도인들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전승은 북두칠성이 상징하는 영생과 지혜, 그리고 우주의 근원적인 리듬을 탐구하고자 했던 그들의 목적과 일치한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북두칠성은 북극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우주의 질서를 측정하는 '하늘의 자'와 같다. 이는 두여 해안이 지닌 지형적 안정성이 우주의 근본 질서와 공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두(斗)'의 기운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에너지를 의미하며, 이는 두여 해수욕장의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드넓은 사구의 생명력으로 구체화된다.
길을 잃은 항해사들이 북두칠성을 보며 방향을 잡듯, 일상의 소음에 지친 현대인들은 두여 해변의 기묘한 요곡 구조를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확인한다. 하늘의 별(斗)이 바다의 바위가 되어 영겁의 시간을 견뎌온 셈이다.
종의 주인이 되는 바위 종주려(鍾主礪)
해수욕장 왼편에 위치한 '종주려(鍾主礪)'라는 바위섬이 있다. 종주려(鍾主礪)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종(鍾)'의 의미를 품고 있다.
鍾(종): 소리를 내는 악기인 종, 또는 술잔이나 그릇을 의미한다.
主(주): 주인 혹은 중심을 뜻한다.
礪(려): 숫돌이나 거친 바위를 의미한다.
지명학적으로 '종주려'는 '종소리의 중심이 되는 바위' 혹은 '종의 형상을 한 으뜸 바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바위섬은 두여 해수욕장 왼쪽 바다 위에 떠 있으며, 날렵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해안의 미관을 완성한다.
재미있게도 두여 해변에는 승천하지 못한 용의 전설이 서려 있다. 하늘로 오르려던 용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습곡 구조는, 마치 하늘의 별자리가 바다로 내려와 지상에 새겨진 거대한 문장처럼 보인다.
시간의 퇴적을 되질하는 곳
지질학적으로 '두여 요곡 구조'는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엄청난 지각 변동을 견디며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겹겹이 쌓인 바위 층은 지구가 보낸 시간을 한 말, 두 말 정성스럽게 되질하여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이곳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나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해변의 모래를 고르고, 용의 비늘 같은 바위가 파도에 씻기는 풍경 앞에서 인간의 고민은 한낱 모래알처럼 작아진다. 두여 해변은 우리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자연이 그러했듯 당신의 삶도 묵묵히, 그리고 풍성하게 채워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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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 기자 miracle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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