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문의 해석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고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대학의 연구원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때 호태왕비문의 해석문제를 두고 이야기가 오갔다. 당시 대학원생들이 가장 많이 보던 고대 사료 해석집이 『사료로 본 한국문화사(고대편)』으로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김철준, 최병헌 두 교수가 편저한 것이었다. 그 연구원이 두 교수의 번역이 당연히 맞다고 주장해서 논쟁이 된 것이다. 두 교수는 광개토대왕릉비의 첫 대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었다.
“옛날 시조 추모왕의 비롯됨은 북부여 천제지자(天帝之子)로부터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니 알에서 깨어 세상에 나셨다”
나 역시 제대로 된 공부할 때까지는 한문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나 한문 공부가 진전되면서 이 해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상당한 문제 정도가 아니라 위 해석은 하늘 천(天), 따 지(地)도 모르기에 나온 해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문과 구두점 찍기
먼저 이 원문은 아래와 같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郎剖卵降世(유석시조차모왕지창기야출자북부여천제지자모하백여랑부란강세)……”
먼저 두 서울대 교수는 구두점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구두점을 찍으면 이렇게 된다.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郎, 剖卵降世……”
구두점에 따라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아!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창업하신 터전이다. 추모왕께서는 북부여에서 나오셨으며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다.”
나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사기』를 주석까지 번역하는 강좌를 5년째 하고 있는데, 역사 한문은 단 한 자도 그냥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두 교수의 번역문은 유(惟)자가 ‘아!’ 또는 ‘생각컨대’ 따위로 쓰는 감탄사라는 사실을 무시한 것은 물론 야(也)자가 한 문장이 끝날 때 쓰는 어조사라는 사실도 무시한 것이다.
-비문의 주어가 북부여인가?
더 큰 문제는 비문의 주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는 점이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고구려인들이 광개토대왕과 시조 추모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문이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시조 추모왕이 고구려를 건국했기에 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시조 이야기를 맨 처음에 서술한 것이다.
그런데 두 교수의 해석대로 “시조 추모왕의 비롯됨은 북부여 천제지자(天帝之子)로부터”라면 추모왕은 하늘을 거스른 반역자가 된다.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내려와 천자의 제국 고구려를 세우는 명분은 추모왕이 하느님의 아들, 즉 천제지자(天帝之子)이기 때문이다. 건국의 정통성을 하늘, 즉 천명(天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교수의 해석대로라면 천제지자는 북부여 해모수가 되고 천제지자로부터 떨어져 나온 추모왕은 하늘을 거스른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두 교수가 천제지자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의하면 천제지자는 해모수이다”라는 주석까지 달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자칭 천제지자와 진짜 천제지자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는 두 교수의 설명과는 달리 쓰고 있다. 해모수에 대해서는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自稱天帝子解慕漱)”라고 쓰고 있다. ‘자칭’은 고구려인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북부여에서 내려오던 추모왕은 엄사수라는 강이 가로막고 있자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자(我是天帝子, 河伯外孫)”라고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다. 추모왕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물의 신인 하백의 외손자이기에 엄사수에 대해 “나를 위해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은 떠올라라”라고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북부여 천제지자로부터 도망가는 반역자가 강물에 명령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천명을 받은 것은 북부여 천제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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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리가 없는데…”
그 연구원은 나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우겼고, 마침 술자리가 연구소 근처였기에 연구소에 와서 『사료로 본 한국문화사(고대편)』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말하던 그 연구원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런 헛된 믿음이 한국 역사학자들을 역사에 관심 있는 대다수 국민들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것이다. 자신의 시각으로 사료를 보지 않고 ‘국사학계 태두’, 또는 ‘○○대 교수’ 따위 외피로 보고 의탁하니 천자문만 알아도 틀린 것을 알 수 있는 해석을 따라가는 것이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는 근래 고등학생들은 물론 심지어 중학생들도 찾아온다. 놀라운 것은 이 어린 학생들도 이미 시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에서 천도교, 대종교, 보천교 같은 민족종교들을 유사종교로 몰아서 탄압했던 악행을 그대로 차용해서 ‘유사’니 ‘사이비’니 하는 비학문적 용어로 매도하는 것으로 학문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니 21세기 개명천지에 통하겠는가?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 역사학과
국내 대부분의 사학과에서는 한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표의문자인 한문은 장기간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습득하지 않으면 깨우칠 수 없는 언어다. 한문은 ‘문리(文理)’가 트여야 하는데, 지금의 커리큘럼으로는 도저히 문리가 트일 수 없다. 『사기』는 주석을 해석할 줄 모르면 본문도 해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일례로 최근의 「고조본기」 강독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그 사람은 노파가 불성실하다고 해서 구타〔告〕하려고 했는데, 노파가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와서 고조(高祖:유방)에게 말〔告〕하자 고조는 마음 속에 홀로 기뻐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사기』 「고조본기」)”
같은 고(告)자를 썼는데, 앞의 고자는 구타하려 했다는 뜻이고, 뒤의 고자는 말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왜 그런지는 주석을 봐야 한다. 앞의 고(告)자에 대해서 중국의 사기 연구가들은 이렇게 주석했다.
“『집해(당나라 장수절)』; 서광(徐廣)은 “다른 책에는 고(告)가 ‘고(苦)’로 되어 있다.”고 했다.
『색은(당나라 사마정)』; 『한서(漢書)』에는 ‘고(苦)’로 되어 있는데, 곤고(困苦)하게 욕을 보이려 했다는 뜻이라고 일렀다. 다른 본(一本)에는 혹 ‘태(笞)’로 되어 있다. 『설문』에는 ‘태(笞)는 격(擊 : 치다)이다’라고 했다(『사기』 「삼가(三家) 주석」)”
이처럼 고(告)자에 대한 주석을 알아야 앞의 고(告)자는 ‘욕보이려 했다’, ‘때리려 했다’는 뜻이고, 뒤의 고(告)자는 알렸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넓고도 깊은 학문의 세계
학문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그러나 천자문만 알아도 할 수 없는 번역을 버젓이 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 학문세계를 주도한다. 그 근본을 캐보면 일본인들에게 배운 학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본다. 그러니 고구려인들이 세운 비문을 부여인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이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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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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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