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시상식, 그래미(Grammy Awards)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레코딩 아카데미가 K-팝을 비롯한 아시아 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언뜻 보면 K-팝의 글로벌 위상을 인정한 ‘경사’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 부문의 신설은 K-팝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오히려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K-팝과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본상(General Field) 무대에서 철저히 격리하겠다는 ‘세련된 인종차별’이자 졸렬한 ‘선 긋기’에 불과하다.
‘먹고 떨어져라’ 식의 주류 음악계의 꼼수
전 세계 흥행 보증수표이자 글로벌 팝 시장의 중심이 된 BTS를 비롯한 K-팝 아티스트들은 이미 성적과 파급력 면에서 영미권 팝스타들과 대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경쟁해 왔다. 폭발적인 빌보드 차트 성적, 압도적인 스트리밍 수치, 전 세계를 주황빛·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스타디움 투어 규모는 이미 K-팝이 특정 지역의 ‘서브컬처’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그래미는 이들을 메인 스트림의 주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해 왔다. 화제성과 시청률, 전 세계 팬덤의 관심은 단물 빨아먹듯 흡수하면서도, 가장 핵심인 본상(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의 문턱은 굳게 닫아걸었다. 이번에 신설된 아시안 팝 부문은 결국 “너희는 본상 넘보지 말고, 우리가 따로 마련해 준 아시아 리그에서 상이나 받아 가라”는 식의 ‘농어촌 특별전형’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과연 다양성을 존중하는 글로벌 시상식의 자세인가? 아니면 백인 중심의 로컬 시상식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자인하는 꼴인가?
언어와 인종의 벽을 허문 아티스트들을 향한 견제
K-팝 아티스트들은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 이후 수많은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영어 곡을 내며 주류 팝 시장의 문을 두드렸던 것은, 그들이 ‘아시아 가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뮤지션’으로서 당당히 경쟁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래미는 이들을 다시 ‘아시안 팝’이라는 좁은 바운더리 안에 가두려 한다. 주류 팝 시장을 뒤흔드는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파괴력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시스템적으로 이들의 본상 진입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졸렬한 견제 책략이다. 춤과 노래, 콘셉트와 메시지까지 완벽하게 결합한 종합 예술을 선보이는 이들을 그저 ‘쇼하는 댄서’ 쯤으로 치부하고 싶은 주류 음악계의 오만함이 이 상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이제는 그래미를 손절해야 할 때
"이런 상 준다면 안 갔으면 좋겠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다 뽑아 먹고 본상은 안 주려는 거다."
"결국 그래미는 안 줄 거라는 말이다. 찌질하다."
대중의 냉소적인 반응은 정확하다. 가요대전에 '동남아시아 가수상'을 따로 만들어 구색만 맞추는 꼴을 보며 환호할 팬은 어디에도 없다. 아티스트의 땀방울과 전 세계 팬덤의 열정이 그래미의 시청률 앵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이제 K-팝과 아시아 음악은 그래미라는 철 지난 권위에 목맬 필요가 없다. 그들이 만든 졸렬한 유리천장 안에서 구걸하듯 상을 받느니, 과감히 거부하고 보이콧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자존심이자 K-팝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다.
미국의 일개 로컬 시상식에 불과한 그래미가 스스로 친 울타리 안에서 고립되어 갈 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음악 중심지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미의 이번 결정은 K-팝의 한계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그래미 자신의 졸렬한 한계를 증명한 역사적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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