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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돌베개 부스에 걸린 '단군-기자-위만' 연표, 왜 아직도 식민사학의 틀을 답습하는가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민국 출판문화의 현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수백 개의 출판사가 저마다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담은 책을 선보이고, 독자들은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지적 흐름을 읽는다. 전시장에 놓인 책 한 권, 전시 문구 한 줄, 디자인 하나까지도 출판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한 장면

서울국제도서전은 여전히 한국 출판문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훌륭한 축제였다. 젊은 세대는 책을 사랑했고, 출판사들은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화려한 축제 한가운데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베스트셀러도, 유명 작가도 아니었다. 바로 오래된 역사 인식을 아무 설명 없이 반복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 연표였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부스 가운데 하나가 돌베개 출판사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출판사라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기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책이 아니었다. 부스 전면에 설치된 하나의 역사 연표였다. 연표에는 'BC2333 단군 → 고조선 → 기자 → 위만'이라는 흐름이  배치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구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학을 공부하거나 우리 고대사의 왜곡 문제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연표가 갖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연표가 보여주는 '역사관'의 문제

연표는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다. 연표는 역사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수많은 관람객들은 책을 일일이 읽지는 않더라도 연표는 무의식적으로 훑어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연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돌베개 부스의 연표는 고조선의 역사를 단군-기자-위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계승 관계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은 조선 왕조 500년을 이끌었던 사대주의 역사관의  이른바 '삼조선론'의 전형적인 구성이다.

조선은 중국 문명을 세계의 중심으로 바라보던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중국 은나라의 왕족이라는 기자가 조선에 와 문명을 전했다는 기자조선설은 오랫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이후 위만 역시 고조선을 계승한 왕조처럼 이해되면서 '단군-기자-위만'이라는 삼조선 체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역사관은 여러 사료 검토와 고고학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립운동역사가들 역시 기자를 검토하여 우리의 정통 역사관에서 베제되었고 그 자리는 고조선은 북부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일제는 그저 우리 역사를 줄이는데 혈안이 되어서 단군뿐 아니라 기자까지 삭제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기자는 우리의 역사관 속에서 사라지거나 변방의 역사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 "기자"를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 역사관이 근대 이후 일본 식민사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일제는 한국 고대사를 독자적인 문명 발전의 역사로 보지 않았다.  중국계 인물인 위만이 지배했으며, 결국 한나라가 낙랑군을 설치해 문명을 전파했다는 구조를 강조했다. 그래서 식민사관을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인물이 위만이다. 

즉, 한민족 스스로 국가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중국의 영향을 받아 문명이 형성되었다는 논리를 구축하는 데  위만은 매우 편리한 소재였다.

 관련 책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 들었다. 혹시 돌베개에서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을 다룬 책을 출간했을까. 고조선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라도 열고 있을까. 부스를 천천히 둘러봤다. 그러나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 관련 서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조선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획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역사 연표를 전시장 한가운데 배치한 것일까. 출판사의 대표 도서와도 연결되지 않는 연표라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상고사는 몇 글자로 끝나고 근현대사는 빼곡했다 연표를 보며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균형감의 문제였다. 근현대사는 매우 세밀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연도도 촘촘했고, 시대 구분도 비교적 자세했다. 반면 상고사는 어떠한가. 수천 년에 이르는 고조선사는 단군, 기자, 위만이라는 세 단어로 끝난다. 

가야는  왜 빠졌는가

더 의아했던 점은 가야였다. 연표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 시점은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야는 없었다. 가야사는 이미 독립된 연구 분야로 자리 잡았고, 최근 수십 년 동안 발굴과 연구 성과도 크게 축적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가야사 연구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조명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힌 바 있다.

출판사는 시대의 지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회가 축적한 지식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문화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연표 하나도 사회적 메시지가 된다. 더욱이 서울국제도서전은 학생과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찾는 행사다. 그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단군-기자-위만'이라는 연표를 본다면 그것이 현재 역사학계에서 어떤 논쟁의 대상인지 알기 어렵다.

역사를 둘러싼 다양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있는 오늘날, 출판계 역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판계가 시대의 지성을 자부한다면, 이제는 관성적으로 반복되어 온 역사 서술을 그대로 전시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축적된 연구 성과와 다양한 학문적 논의를 반영하려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때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마주한 돌베개 부스의 역사 연표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고대사를 얼마나 무심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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