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가 4년여의 긴 법정 싸움 끝에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2017년에 있었던 일이 무려 5년이나 지난 2022년에 고소장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해 한국을 대표하는 노배우는 인생의 가장 찬란해야 할 늦깎이 전성기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법적으로는 무죄가 입증되었으나, 그가 억울함 속에 흘려보낸 시간과 짓밟힌 명예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유죄 추정의 폭력성’과 모호한 잣대가 낳은 참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강제추행’이라는 혐의가 가지는 맹점과 추상성이다. 명백한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는 성폭행과 달리, 추행은 행위의 맥락과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매우 크다. 특히 최근 사법부와 사회 전반에 무적의 논리처럼 자리 잡은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은, 종종 객관적 정황보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주관적 진술에 과도한 무게를 싣는 결과를 낳곤 한다. 오영수 배우의 사례처럼, 그저 '그렇게 느꼈다'는 모호한 주장 하나로 인해 팔순의 노배우는 말년에 3년 반이라는 긴 세월을 사회적 감옥 속에서 신음해야만 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이러한 논란은 치명적이다. 아니, 가혹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의혹이 제기되는 그 순간부터 연예인은 ‘사회적 사형 선고’를 받는다. 평판이 곧 생명인 직업적 특성상, 의혹 한 줄만으로도 출연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당하고, 광고가 끊기며 당장의 먹거리가 박탈당한다.
"음해는 곧 살해와 같다." 사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섣부른 여론 재판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살해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야만적인 관행은 이제 제발 없어져야 한다. 미투 운동의 순기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나, 그것이 명확한 증거 없이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는 도구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 기사와 영상에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중이 느끼는 문제의식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무고는 최소한 피해자가 당할 만큼, 혹은 그 배로 처벌해라”, “무고죄 형량을 올려라”라는 외침이 빗발치는 이유는 자명하다.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직장에서 쫓겨나게 만들며, 씻을 수 없는 주홍 글씨를 새긴 거짓 고발에 대한 법적 책임이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도 가볍기 때문이다. 혐의를 벗더라도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과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온전히 상처받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오영수 배우의 무죄 확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다행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무책임한 ‘마녀사냥’과 기업들의 섣부른 ‘손절 문화’에 강력한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일방적인 폭로만으로 한 사람의 밥줄과 숨통을 끊어버리는 일은 근절되어야 마땅하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가장 영광스러웠어야 할 시간을 억울함 속에 허비해야 했던 노배우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한 네티즌의 따뜻한 댓글처럼, 이제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으시기를 응원한다. 아울러 사법부와 입법부는 억울한 이들의 눈물로 지어지는 ‘무고의 감옥’을 허물기 위해, 무고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음해로 사람을 죽이는 일, 이제는 정말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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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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