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철거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영국 런던 구의회의 조치는 현대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탄소 중립(Net-Zero)이라는 거룩한 명분 아래, 정작 가장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생명권과 기본권이 처참히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뉴스 속 한 시민의 절규와 대중의 공분은 오늘날 환경 정책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중헌디? 결국 사람의 생명 아닌가?”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선도했던 국가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19세기 세금 징수를 위해 창문을 막았던 ‘창문세’ 시절이나, 자동차 산업을 스스로 죽였던 ‘적기조례’의 망령을 소환하고 있다. 역사적 보존 구역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혹은 천장에 선풍기가 없으니 에어컨 설치가 부당하다는 당국의 억지 논리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관료주의의 극치다. 1층 창문을 열어두면 범죄가 우려된다는 주민의 말에 “밤에는 창문을 닫으라”고 응대하는 모습에선 국민의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이번 사태는 겉으로는 탄소 중립을 표방하지만 속내는 심각한 ‘전력 부족’과 공급망 실패를 감추기 위한 규제일 가능성이 크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에어컨 사용을 허가해 주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거시적인 목표가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옥죄는 무기로 변질된 것이다. 정작 법을 만드는 고위층과 왕실은 에어컨이 완비된 쾌적한 공간에서 머무는 동안, 폭염의 직격탄을 맞는 이들은 에어컨 한 대 마음대로 틀 수 없는 서민들이다.
역사적으로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구하자는 운동은 인간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연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 유럽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전도된 ‘에코 파시즘(Eco-Fascism)’의 징후를 띤다. 인간이 배제된 자연, 사람이 죽어 나가는 친환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기후위기 해결은 꽉 막힌 단속과 금지가 아니라, 대체 물질을 개발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효율화하는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선선한 그늘 아래서 “지구를 지키자”고 외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40도의 가마솥더위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문명의 이기를 빼앗는 것은 환경 보호가 아니라 폭력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당국은 “영국만이 암흑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내부의 뼈아픈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를 살리기 전에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 제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생명을 등한시할 때, 그 사회는 이미 문명국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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