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권력자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표현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역사에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거대한 역사 제작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바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서는 기자조선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학계 역시 기자가 한반도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자동래설'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자조선은 결코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조선이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단군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전체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기자조선이 처음부터 완성된 역사였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 최고(最古)의 문헌이라는 『상서』에는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이 없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기자 사후 약 천 년이 지난 뒤 한나라 시대 『상서대전』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사기』에서는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내용이 추가되고, 『한서』에서는 기자가 조선을 문명화하고 팔조금법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더해진다. 『삼국지』에 이르면 기자의 후손 40여 세가 등장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구체적이 된다.
역사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다. 보통 실제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이 희미해지고 자료가 줄어든다. 그런데 기자조선은 정반대였다. 기록은 더욱 풍부해졌고, 인물은 늘어났으며, 계보는 정교해졌다.
더 놀라운 일은 한국에서 벌어졌다. 고려 숙종 때인 1102년, 기자가 죽은 지 약 2,400년이 지난 뒤 평양에 기자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졌다. 문제는 그 이전까지 기자의 무덤이 평양에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무덤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자를 숭배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무덤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기자사당이 국가적 제사의 대상이 되었고, 단군은 기자사당에 함께 배향되는 처지에 놓였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6세기에는 윤두수의 『기자지』와 율곡 이이의 『기자실기』가 편찬되었고, 기자는 조선을 교화한 성인으로 자리 잡는다. 심지어 명나라 사신들은 중국에도 없던 기자의 역사를 조선에서 가져가 간행하겠다고 감탄하기까지 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오히려 조선에서 더욱 풍성하게 살이 붙어 중국으로 역수출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41대 기자왕'이다. 13세기 『제왕운기』에서는 기자의 후손 41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18세기 기록에는 연대가 빠져 있고, 19세기 『기씨보』에서는 연대가 완성되며, 대한제국 시기 교과서에 이르러서는 각 왕들의 업적까지 추가된다. 한마디로 역사라기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완성되어 간 서사인 셈이다.
기자의 무덤 역시 의문을 던진다. 평양이 아니라 중국 하남성과 산동성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기자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유적들이 존재한다. 『사기색은』과 『수경주』 등 중국 문헌은 기자의 무덤을 양국(梁國) 몽현, 즉 현재의 하남성 상구 일대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후대에 평양에 만들어진 기자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어도 기자와 평양을 연결하는 전승이 매우 후대의 산물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기자조선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은 중화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를 이용했고, 고려와 조선은 성리학 국가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자를 숭배했으며, 일제는 필요에 따라 기자를 인정했다가 다시 부정했다. 시대마다 정치적 목적은 달랐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었다.
그래서 기자조선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기자가 실제 존재했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가"이다.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인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기자조선을 둘러싼 긴 역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역사는 단순히 오래된 기록이라고 해서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형성된 과정과 의도를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그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기록을 믿는 일이 아니라, 기록이 만들어진 과정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 읽기의 출발점일 것이다.
![]() |
박찬화 전문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문국’ 망령의 부활인가… 남원문화원은 누구를 위한 역사를 가르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