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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이름 하나가 바꾼 동아시아의 언어와 역사…'피휘(避諱)' 문화 재조명'세(世)' 대신 '대(代)', '관세음' 대신 '관음'… 황제 이름을 피해 바뀐 언어와 역사
피휘 이미지..... AI작업

동아시아 역사에서 황제나 임금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는 '피휘(避諱)' 문화가 언어와 지명, 종교, 역사 기록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피휘란 왕이나 황제, 조상 등 존귀한 인물의 이름에 사용된 글자를 직접 쓰거나 읽는 것을 피하는 관습을 말한다. 중국 진·한 시대부터 제도화되기 시작해 수·당 시대에 더욱 엄격해졌으며, 고려와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도 전해졌다. 당시에는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중죄를 받거나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당나라 제2대 황제인 태종 이세민(李世民, 재위 626~649)이다.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세(世)' 자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면서 사회 전반에서 이를 다른 글자로 바꾸는 '피세작대(避世作代)'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치세(治世)'는 '치대(治代)'로, '세종(世宗)'은 '대종(代宗)'으로 표기하는 사례가 등장했으며,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몇 대째'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불교 용어에도 피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원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는 명칭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당 태종의 이름에 포함된 '세(世)' 자를 피하기 위해 '관음'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피휘뿐 아니라 불경 번역 과정과 번역 전통의 차이도 함께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 말기의 인물인 연남생 역시 피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연개소문의 장남인 연남생은 당나라에 귀부한 이후 당 고조 이연(李淵)의 이름 '연(淵)' 자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천(泉)'으로 바꾸어 '천남생(泉男生)'으로 기록되었다. 오늘날 중국 낙양 북망산에서 발견된 묘지명에도 이러한 표기가 남아 있어 피휘 문화의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성씨인 '김(金)'의 발음에도 피휘와 관련된 설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본래 '쇠 금(金)'으로 읽던 성씨가 왕실의 피휘 문화와 언어 변화의 영향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김(金)'으로 정착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피휘의 영향뿐 아니라 신라 이후의 음운 변화와 성씨 독음의 독자적인 발전 과정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현재 국립국어원은 '金'을 일반 명사로 사용할 때는 '금', 성씨로 사용할 때는 '김'으로 읽는 것을 표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한자 발음에도 역사와 언어 변화가 함께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휘 문화는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다.

서울 광진구와 구리시 사이에 위치한 아차산은 『삼국사기』에는 '아단산(阿旦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건국 이후 태조 이성계의 이름 '단(旦)' 자를 피하기 위해 다른 글자로 바꾸어 표기하면서 오늘날의 '아차산'이라는 이름이 정착했다는 견해가 전해진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음운 변화와 지명 변천 과정에 따른 다른 학설도 함께 존재한다.

피휘는 중국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청나라 강희제의 이름인 '현(玄)' 자를 피하기 위해 여러 문헌에서 '현(玄)'을 다른 글자로 바꾸어 표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도교와 유교 경전, 비문과 역사서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발견되며, 고문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헌 해석 과정에서 피휘 여부를 반드시 함께 살펴야 한다고 설명한다.

조선 왕조에서도 왕의 이름은 엄격한 피휘 대상이었다. 세종대왕의 이름인 '도(祹)', 정조의 이름인 '산(祘)' 등은 공식 문서나 관청 기록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을 삼갔으며,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획을 생략하는 방식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관행은 왕권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당시 정치와 문화 질서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단서가 되고 있다.

역사학계는 피휘를 단순한 금기나 언어 습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당시 국가 권력과 정치 질서가 언어와 문자, 종교, 지명, 인명, 역사 기록에까지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 현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세대', '관음보살', '김씨', '아차산'과 같은 단어와 지명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피휘 문화와 언어의 변화, 그리고 시대 권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같은 인물과 지명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이유 역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피휘는 단순히 글자 하나를 바꾸는 관습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언어를 바꾸고, 종교 용어를 바꾸고, 성씨의 독음과 지명, 역사 기록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 속에는 당시 정치와 문화, 언어가 빚어낸 시간의 흔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피휘를 이해하는 것은 곧 동아시아 문명의 역사와 언어의 흐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라 할 수 있다.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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