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내판의 사진 속 한 문자가 눈을 사로잡는다. 남한산성입구역의 한자 표기가 우리가 오랫동안 써온 온전한 정자체(번체자) '南漢山城'이 아니라, 중국 본토의 간체자인 '南汉山城'으로 새겨져 있다. 씁쓸함과 함께 다소 황당한 감정이 밀려온다. 고유 지명에 담긴 역사의 무게를 떠올린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지하철 역명이나 주요 공공 표지판에 중국식 간체자가 본격적으로 스며든 것은 2010년대 중반, 대략 2016년 무렵부터다. 계기는 단순했다.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돕겠다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었다. 서울시가 '서울'의 한자 표기로 오랫동안 써온 '首爾(수이)' 대신 중국식 표기인 '首尔(서우얼)'을 공식 채택해 홍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외국인 방문객을 배려한다는 명분은 거창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적 정체성은 손쉽게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명은 단순히 목적지를 가리키는 위치 정보가 아니다. 그 땅을 거쳐 간 시간과 삶, 문화적 뿌리가 얽혀 있는 고유한 역사다. 그럼에도 관광 편의성만을 앞세워 간체자를 오남용하는 현 행태에는 여러 치명적인 맹점이 존재한다.
첫째,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다. 공공장소의 한자 표기는 오직 중국인 관광객만을 위한 시혜적 서비스가 아니다. 지명의 연원과 본래 뜻을 한자 문화권인 우리 스스로 정확히 인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표준 정체자(正體字)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관광 편의성 측면에서도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원래대로 정체자를 표기하면 한국인은 물론, 동일하게 정체자를 사용하는 대만과 홍콩, 한자를 공유하는 일본 등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 사용자 모두가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오직 중국 본토에서만 쓰이는 간체자로 대체해 버리면, 다른 국가의 방문객들은 배제된 채 특정 국가만을 위한 안내판으로 전락하고 만다. 형평성에도 어긋날뿐더러 배려의 범위마저 좁아지는 셈이다.
셋째, 고유명사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번역 남발이다. 한자의 글자 모양을 간체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명의 뜻 자체를 중국어 표현으로 재번역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일부 노선도에서는 '김포공항'의 '공항(空港)'을 중국식 표현인 '지창(机场)'으로 표기해 큰 논란을 샀다. 한국의 고유 지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타국의 언어 습관에 한국의 공간을 맞춰버린 주객전도의 전형이다.
지명에 담긴 본래의 뜻과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근본이 되는 정자체 표기로 바로잡아야 한다. 병자호란의 아픔과 항전의 기개가 서린 남한산성(南漢山城)이라는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사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뼈대가 깎여 나간 '汉'이 아니라 온전한 글자인 '漢'으로 기록되고 불려야 마땅하다. 편의라는 핑계로 스스로의 문화적 깊이를 깎아먹는 우를 더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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